한치 앞도 못보는 수급조절(전력비상: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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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남아 돈다며 많이 쓰라더니/5년도 안돼 수요늘자 법석/설비확충 이전엔 절약만이 최선책
전력사정이 이 지경까지 온데 대해 가장 큰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
최근의 전력공급 부족사태는 근본적으로 정부가 수요예측을 그르친데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불과 5년전 60%에 이르던 공급예비율이 올해 4.5%로,내년에는 2.2%로 떨어질 판이다.
87∼89년간 발전소 건설은 사실상 중단됐다.
그러나 86∼88년의 폭발적인 경기활황이 89년이후 본격적인 소비증가로 나타나면서 전기사용량이 급증했고 이 추세는 아직껏 계속되고 있다.
○예비율 매년 급감
「깨끗한 에너지」를 강조하면서 잇단 요금인하로 소비를 부추겨온 정부가 작년 하반기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소비절약책을 세우고 공급확대방안에 나섰지만 한번 늘기 시작한 소비증가추세를 잡기엔 역부족이었고 발전소는 하루이틀에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있는 시설로라도 공급을 최대한 늘리려니 발전소의 무리한 가동으로 잦은 사고가 발생,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주무당국인 동자부와 한전은 85∼86년 당시 향후 소비증가를 감안,시설확장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기획원에 눌려 무산됐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이는 동자부·한전의 설득능력부족을 드러낼 뿐 면책 사유는 될 수 없다.
에어컨이 전력소비급증의 주범이고 또 여름철냉방수요를 위해 원전4기를 새로 짓는 것이 경제적 비효율이라 판단했다면 에어컨보급을 지연시키기 위한 특소세인상·누진요금제확대 등이 벌써 시행됐어야 했다.
또 소득증가에 따라 에어컨보급이 불가피한 추세라 판단했다면 이를 감당할만한 전력공급계획을 추진했어야 한다.
○장기적 대책 시급
그 어느쪽도 하지 않고 수수방관하다 이제와서 요금을 인상조정하고 시설확충계획을 발표해야 제 효과가 나질 않는다.
정부는 전력사정이 어렵기는 우리뿐 아니고 일본·대만·인도네시아 등도 마찬가지여서 수급조정제를 실시한다고 말한다. 이 또한 변명에 불과한 소리다.
그러나 전력난은 닥쳐왔고 무언가 방도를 찾아야만 한다.
단기적으로 소비를 줄이고 중·장기적으로 설비를 늘리는 일외엔 방법이 없다.
정부는 대형수요업체엔 전력공급을 제한하며 여름철 실내온도를 높이고 또한 집단휴가를 가는 업체에 전기요금을 깎아주는등 소비절약책을 내놓고 있다. 이와 함께 장기 전원개발계획을 수정,오는 2006년까지 발전설비를 현재의 2천1백19만㎾에서 5천8백66만9천㎾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나 73조원에 달하는 투자재원 마련과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입지확보 어려워
당장 올해만도 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3조3천억원 가운데 2조원의 재원염출방안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발전소가 들어서는데 대한 해당지역 주민들의 거부감으로 입지확보도 어렵다.
정부의 판단잘못에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고 번번이 국민들이 「협조」라는 이름으로 뒤치다꺼리를 해야하는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소득이 늘어나면서 실수요자들의 전력소비도 낭비적인 요소가 없지 않다. 경쟁국에 비해 전력요금이 너무 싸다는 지적도 있다. 소득과 소비,그리고 발전시설과의 상관관계를 따져가며 장단기 전력수급계획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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