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악몽으로 끝난 '차이나 드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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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중국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던 한국 중소기업 A사. 이 회사는 최근 현지 세무당국에서 "지금까지 수출할 때 관세를 환급해 주었던 만큼 우리가 당신 회사 계좌에서 2억원을 출금했다"는 황당한 통지를 받았다. 통장 주인의 동의도 없이 세무당국이 미리 돈부터 빼내갔다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통보였다. 지난해 10억원가량의 적자를 보고 공장 문을 닫을 작정이던 이 기업은 넋을 놓아버렸다.

중국에서 한국 기업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칭다오(靑島)시. 이곳에 진출한 기업들은 한결같이 힘들어 하는 표정이다. 몇몇 부도난 기업들이 정상적인 청산 절차도 없이 도피성 출국을 하다 보니 남아 있는 한국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떨어졌다. 현지 중국계 은행들은 멀쩡한 한국 기업들까지 담보인정비율을 깎아내려 돈줄을 죄고 있다.

섣불리 중국에 진출했던 한국의 영세 중소기업들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몰라보게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단순히 저임금만 노리고 진출했던 우리 기업들이 설 땅을 잃고 있다. 저임금.세제혜택 등 달콤한 투자 유인책을 제시했던 중국 정부가 태도를 돌변하면서 빈손으로 쫓겨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이 최근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둥관(東莞), 산둥성의 칭다오.옌타이 등 한국 기업 밀집지역을 현지 조사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중국의 투자 환경이 나빠지면서 많은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잃고 경영난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김동선(金東善) 산자관을 단장으로 현지 실정에 밝은 주중 한국상회.대한상공회의소.KOTRA.무역협회.중소기업진흥공단.산업연구원 소속 전문가들이 50여 개 업체를 직접 방문해 내린 결론이다.

보고서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상당수 지역에서 영세 기업주들이 공장 가동을 아예 포기하고 '엑소더스(탈출)'를 감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둥관시의 경우 40개에 달했던 한국의 봉제.의류.완구 분야 기업이 최근 15개로 줄어들었다. 사라진 기업들 가운데 상당수는 야반도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몰래 빠져나간 이유는 중국 당국의 기업 청산 절차가 까다로운 데다 이를 그대로 따를 경우 한푼도 건지지 못하고 심지어 감옥에 가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동선 산자관은 "기업이 청산 단계에 들어가면 중국 당국이 그동안 수출품에 대해 환금받았던 관세뿐 아니라 각종 세제 혜택, 체불 임금까지 철저히 소급해 징수한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마구잡이 토지개발을 막기 위해 환경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면서 예상치 못한 불똥이 튀어 아예 공장을 빼앗기다시피한 경우도 생겨났다. 칭다오에서는 합법적인 토지 사용 허가를 받지 않고 공장을 가동해온 기업들이 중국 당국에 강제 퇴거 명령을 받고 난감해하고 있다. 이들은 공식적인 수출전용 공단에 입주하지 않고 현지 지방정부 간부들의 개인적 약속만 믿고 땅값이 싼 변두리 지역에 공장을 지었다 낭패를 본 경우다.

김 산자관은 "중국은 인건비와 땅값이 싸다고 알고 있지만 현지에 진출한 중소기업들 중 인력난.공장용지난을 겪는 황당한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말했다. 더 이상 막무가내식 투자는 통하지 않고 철저한 현지 조사와 노무관리 인력 확보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당장 어려움에 빠진 영세업체들을 도와줄 긴급 처방을 서두르고 있다. 김 산자관은 "현행 규정상 해외 투자기업들의 자동화나 공장 이전, 업종 전환 등이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는 만큼 이를 보완해 줄 것을 본국 정부에 요청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바로잡습니다

◆1월 29일자 E1면 '악몽으로 끝난 차이나 드림'의 기사와 지도에서 중국 지명 '둥완'은 '둥관'이 맞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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