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민중봉기 왜 일어났나] 민심 폭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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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그루지야 민중봉기는 독립과 사회주의 포기 이후 지난 10년 동안 억눌려왔던 국민의 불만이 한꺼번에 터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제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옛 공산당 출신 관료들의 무능과 서구 자본의 유입으로 '돈맛'을 알게 된 대통령 측근 및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이번 사태의 원인이며, 여기에 강력한 개혁을 요구하는 30대 젊은 정치세력이 나서 봉기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

그루지야는 서구적인 경제모델을 채택하면서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상당한 투자를 유치했다. 하지만 투자 유치는 성장의 기반이 되기는커녕 국가적 혼란의 원인이 됐다. 부정부패 때문이다. 외국 투자는 셰바르드나제와 결탁한 일부 관료와 특권층 출신 기업인들의 이권 투기장으로 변질했으며 경제는 뒷걸음질만 쳐 국민 상당수가 빈민층으로 전락했다. 게다가 셰바르드나제는 국민에게 부정부패를 추방하겠다고 약속하고서도 측근과 가족의 비리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바람에 민심이반 현상이 가속됐다.

이번 반정부 시위는 셰바르드나제가 정치에 입문시킨 30대 '젊은 피'두 사람이 주도해 민심이반의 정도를 짐작케 한다. 미하일 사카슈빌리(35) 국민운동당 당수와 야당이 임시 대통령으로 지명한 니노 부르자나제(39) 민주당수는 모두 셰바르드나제가 이끄는 '시민연합'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으나 결국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며 반정부 세력으로 돌아섰다.

사카슈빌리는 변호사 출신으로 2000년 셰바르드나제에 의해 법무장관을 지내기도 했는데 부정부패를 깊숙하게 파헤치다 서로 등을 지게 됐다. 부르자나제 민주당 당수는 아버지가 셰바르드나제의 측근으로 2001년 11월에는 시민연합 소속으로 국회의장까지 지냈으나 셰바르드나제와 맞서다 결국 야당을 창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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