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김두우가 본 정치 세상] 총선 초점 '제 2당 쟁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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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정치 시장에는 몇가지 굵직한 현안이 꿈틀거리고 있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론 등이 그것이다.

나라가 혼란스럽건, 경제가 나빠지건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정치권이 이 현안들에 목을 매는 이유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각 정당들이 내년 4월 17대 총선 결과가 자신들의 생존과 직결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총선 결과에 따른 정국 시나리오를 미리 짚어보면 이해하기 쉽다.

총선이 끝났다고 가정하자. 한나라당은 과연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을까. 현재 한나라당은 과반인 1백37석보다 훨씬 많은 1백49석을 확보하고 있다.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차지한 의석은 1백33석이었지만, 대선 과정에서 자민련.민주당과 무소속 의원들이 입당해 불어난 것이다. 한나라당 당직자나 의원들은 개인적으론 "과반을 차지하진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렇지만 원내 제1당의 위치까지 빼앗기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른 당에서도 공식적으론 "우리가 1당이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석에선 대체로 이런 전망에 동의한다.

물론 이것도 한나라당이 대선자금 정국을 그럭저럭 수습하고 정치개혁과 물갈이 공천에 어느 정도 성공한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의 얘기다. 이게 실패하거나 그 과정에서 분당이라도 된다면 영남지역에서조차 무소속과 열린우리당에 상당한 의석을 내주게 될지 모른다. 제2당으로 밀려나는 순간 한나라당은 공중분해의 악몽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다만 현 시점에서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과반은 안되지만 원내 제1당은 유지' 쪽이다. 그래서 '제2당을 누가 차지하느냐'가 최대 관심사다.

이에 따라 정국 구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열린우리당이 2당이 됐다고 치자. 이는 열린우리당이 현 47석의 두배 안팎으로 대약진했다는 의미로, 전국적 의석 분포를 갖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역기반이 다른 당보다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선전하고 호남과 영남에서 어느 정도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제2당이 될 수 없다.

한나라당은 호남에서, 민주당은 영남에서 의석을 갖지 못할 것이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열린우리당은 '지역 구도를 타파한 전국정당'이란 명분과 함께 정국 주도권도 쥐게 될 것이다. 제1당에 근접한 제2당이 된다면 더욱 그렇다. 원래 같은 뿌리였던 민주당에 대한 흡인력이 엄청나게 커지고, 무소속 당선자도 열린우리당에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은 해방 이후 최초로 보혁(保革)구도로 재편될지 모른다.

민주당이 제2당이 되려면 호남(현 29석)을 석권하고 서울.인천.경기(현 97석)에서 절반 가까운 의석을 차지해야 가능하다. 이는 盧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노선에 대해 국민이 외면했다는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이 경우에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재결합이나 제휴가 추진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 주도권은 민주당 몫이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책임총리제가 도입되고, 총리는 민주당에서 내게 될 수도 있다.

물론 한나라당도 손놓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당과 자민련, 심지어 열린우리당과의 제휴 가능성조차 배제할 수 없기는 하다. 다만 제휴 대상은 제3당 이하가 되기 쉽다. 누가 제2당이 되든 그 당은 한나라당의 종속변수가 되기보다는 정국의 주체 역할을 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제2당 싸움이 내년 총선의 최대 관심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두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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