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평양 외교가의 '작은 변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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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평양에 1주일여 머무르며 북한이 얼마나 고립돼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노동신문은 매일 전체 지면 6개면 중 2개면을 남한 소식과 외신에 할애했다. 그러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사실이 비틀린 경우가 태반이고 그나마 2~3일씩 뒤늦은 소식이었다. 텔레비전 채널은 하나였고 국제 뉴스는 거의 없었다. 북한이 해외 특파원을 보내고 있다는 얘기도 못 들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평양에 머물렀던 기간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40~5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비현실적인 시간이었다. 외부세계와의 단절은 그만큼 극적이었다.

평양에 주재하는 한 서방 외교관에 따르면 외국 대사관들이 모여 있는 지역도 철저하게 일반 국민과 격리돼 있다고 한다. 그래서 대사관에서 파티를 열기 위해 북한 정부 관리를 초청하려면 사전에 외무성의 서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서면 허가를 들고 있지 않으면 아무리 차관급 인사라 하더라도 대사관들이 모여 있는 지역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북한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조짐은 있었다. 우선 고려호텔에서는 1년 전과 달리 BBC.NHK.CC-TV(중국) 등을 볼 수 있었다. 외교단지 안에 있는 세계식량계획(WFP) 건물에서는 매주 금요일 저녁 평양 거주 외국인들이 모여 파티를 하는데 비정부기구(NGO)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이 50여명 이상 모인다고 한다.

또 어느 서방 외교관은 "1년 전과 달리 낯선 외국인들이 자주 눈에 띈다"고 했다. 그만큼 외국인들의 출입이 많아지고 잦아진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평양으로 가는 조선민항에는 평양의 한 여공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가는 네덜란드 촬영팀이 함께 타고 있었다. 그들을 비롯해 승객의 절반이 서양인이었고 남한 사람을 포함하면 비행기 안의 3분의2는 외국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서방 외교관은 최근 북한 정부가 각국 대사관에 독자적인 위성 안테나를 세우도록 허락해 주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전화선을 이용해 간신히 e-메일이나 받아 보는 정도였지만 앞으론 인터넷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위성TV 수신도 자유로워져 앞으론 평양살이가 덜 답답할 것 같다며 그 외교관은 밝게 웃었다.

지난 10월 중순 평양을 다녀온 유럽연합(EU)의회 의원 글렌 포드는 평양의 한 자유시장을 다녀온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스페인에서 온 오렌지, 북아프리카산 대추야자, 컴퓨터 부품을 비롯해 고기.생선.쌀 등 없는 게 없었다. 수천명이 모여 물건을 사고파는 말 그대로 시장이었다. 물론 물건 값이 비싸 서민을 위한 시장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시장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내가 가봤던 평양의 한 시장 앞에는 버스가 서 있었다. 멀리서도 이 시장에 찾아온다는 얘기였다. 북한은 분명 중국식 경제개혁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평양에서 만난 40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도 남과 더불어 살아야 하듯 나라도 마찬가지다. 냉전이 끝나고 사회주의 국가와의 거래가 끊긴 데다 물난리를 연이어 겪으며 살기가 무척 힘들어졌다. 다른 나라와 경제 교류를 더욱 활발하게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는 영어와 컴퓨터가 중요하다. 우리 애들한테 그 두 가지를 각별히 공부하도록 했다." 북한이 왜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에서 실낱같은 희망이 보였다.
이재학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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