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 조훈현, 독침을 맞고 쓰러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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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8강전
[제11보 (164~177)]
白.曺薰鉉 9단 黑.趙治勳 9단

우상 흑▲를 바라보며 조훈현9단은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낀다. 보통 때는 대악수지만 지금은 직감적으로 독수(毒手)다. 그러나 초읽기가 급해 망설일 여유는 없다.

'참고도'가 조훈현의 머릿속에 그려진다. 백1로 이으면 흑2로 나온다. 백3 끊으면 4의 이음. 축은 안되니까 백은 5로 뻗게되는데 그순간 6의 단수를 당한다. 다음 흑은 8로 연결하고 백도 9로 끊어 생사를 건 수상전. 이때 흑▲의 선수가 절묘하게 작용하여 흑도 여섯수이고 백도 여섯수다. 그러나 백은 애석하게도 11의 가일수가 필요하여 수상전에서 한 수 지게 된다.

조훈현은 아! 하고 속으로 비명을 토한다. 흑▲의 주문을 피할 수 없다. 이긴 바둑이었는데 좌변에서 너무 강수를 두다가 독침을 맞고 말았다. 초읽기 때문에 황망히 164로 물러선다.

조훈현의 얼굴이 대춧빛으로 붉어졌다. 조치훈9단도 흥분한 듯 눈자위가 빨갛다. 조치훈은 165를 선수한 뒤 167로 한점을 끊었다. 승리의 한 수이자 눈감고도 둘 수 있는 한 수인데 이 수를 두는 손끝이 저절로 떨려온다.

167은 15집 이상이다. 조훈현은 174,176으로 우변을 파고들었지만 이미 대세는 크게 기울었다. 조치훈에게 지다니! 조훈현은 이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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