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치제도 있으나마나/법정소란 왜 계속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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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법적용 절차 까다로워/법관들 활용기피 경향/사법부·검찰 함께 대응해야
4일 강경대군 상해치사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전경 5명에 대한 첫 공판 법정에서 사상 최악의 법정소란으로 재판이 중단돼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이날의 법정소란은 방청객이 변호사의 멱살을 잡고 뺨을 때린데다 재판기록을 훼손하고 법대위까지 올라가는가 하면,피고인석 등에 설치돼 있는 마이크를 뽑아 휘두르는등 난동에 가까운 것이어서 사법권의 존립자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방청객에 의한 법정소란은 5공초기부터 간헐적으로 시작돼 시국사건마다 당연한 것처럼 번지고 있는 실정.
대법원도 이에 따라 81년 1월 감치제도를 마련,법정소란행위에 대해서는 20일 이하의 감치명령이나 1백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4월24일 전 전대협의장 송갑석군(25·전 전남대학생회장)5차공판에서 방청객들이 재판부의 제지에도 노래·구호를 계속 외치자 재판장인 정상학 부장판사가 재판을 중단하고 방청객 68명 전원에 대해 감치명령을 내렸던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사법부는 법정소란이 문제가 될때마다 법정의 권위·질서확립을 위해강력히 대응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일선 법관들은 감치제도 활용을 현실적으로 꺼리고 있는 실정.
감치재판을 별도로 열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다 일반 형사사건은 검사가 범죄사실을 적시해 법관은 판단만 하면 되지만 감치재판은 판사가 범죄사실을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일반 사건은 피고인들에 대해 검사가 「악역」을 담당하지만 감치재판은 법관이 판·검사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집계에 따르면 법정소란은 매년 크게 늘어 법정질서를 깨뜨려 감치·과태료·즉심회부 등의 처벌을 받은 사람이 89년 95명에서 지난해에는 2백39명으로 늘어났다.
대법원은 그러나 이같은 제도만으로는 법정소란이 근절되지 않자 한때 법원조직법을 개정,영미식으로 법원경찰대를 신설한다는 구상을 했었으나 제도개선보다 국민들의 의식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판단,이를 백지화했었다.
85년 7월 서울 미문화원 농성사건 방청객들의 법정소란으로 당시 김석휘 법무장관이 물러나기도 했었다.
당시 김장관의 사임은 이 사건 관련 피고인들처리에 비교적 온건한 입장으로 정부내 강경파들과 다소 이견을 보인데다 법정소란행동에 강력하게 대응한다는 정부의 의지표명으로 받아들여졌었다.
그러나 최근 시국사건재판을 맡았던 한 재판장은 법정에 들어가기에 앞서 『비록 신발짝이나 돌멩이가 날아오더라도 절대로 당황하거나 피하지 말라. 시국사건일수록 재판부가 당당한 자세를 보여주지 못하면 법정질서는 유지할 수 없다』고 배석판사들과 다짐을 하고 있을 정도로 법정소란이 만연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법정질서유지는 모두 재판장의 책임이며 어떤 경우라도 법정의 존엄성은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양심수의 법정소란은 영원한 사법부의 숙제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지만 방청객의 법종소란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피고인보다 방청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법조인들은 법정소란이 사법권의 독립과도 직결된 문제로 보고 있다. 사법권독립에 불신이 있을 경우 법관의 재판에 관한 신뢰성이 약화되고 자연히 법정의 권위도 손상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법부와 검찰은 모두 진상조사후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혀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이상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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