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학습 정치' 뿌리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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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새로운 정치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다. 과거의 '밀실정치'와는 전혀 다른 이른바 학습(學習)정치다. 중국 공산당의 최고 권부(權府)인 당 정치국이 '선생님'을 모시고 함께 공부하면서 토론하고, 여기서 나온 결론을 국가 정책으로 추진하는 방식이다. 후진타오(胡錦濤.사진) 주석 등장 이후 나타난 변화다.

정치국의 최초 집단학습은 2002년 12월 26일 시작됐다. 후 주석이 공산당 총서기로 선임되고 한 달 남짓 지난 때였다. 상무위원 9명을 포함한 정치국원 25명(후보위원 1명 포함)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참석했다.

당 관계자는 "후 주석은 지혜의 집적(集積)을 원한다"고 말한다. 가장 최근에는 23일 제38차 집단학습이 열렸다. 한 달에 평균 두 번 열린 셈이다. 정치국원들의 일정이 분 단위로 짜여 있을 정도로 바쁘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한 열의다.

학습의 주된 세 가지 특징은 ▶주제의 전문화 ▶외부강사 초빙 ▶전원 토의다. 강사는 주로 런민(人民)대.베이징(北京)대.칭화(淸華) 대 등 중국의 3대 명문 대학과 사회과학원.군사과학원.중앙 당교 등 정부 산하 싱크탱크 소속 교수와 전문가들이다.

대개 2~3명의 강사가 초빙돼 강의와 토론이 하루종일 진행된다. 주제는 금융시장 개방, 국가발전 전략, 공산당의 집권 역량 배가 방안, 법치국가 실현, 지구환경 등 묵직하고 다양하다.

최근 한국에서 방영되기 시작한 중국 중앙방송국(CC-TV)의 '대륙의 굴기'12부작도 2003년 11월 26일 제9차 정치국 집단학습에서 결정된 사안이다. 당시 강사는 수도사범대학의 치스룽(齊世榮) 교수, 난징(南京)대학의 첸성단(錢乘旦) 교수 2명이었다. 이들은 15세기 이후 강대국들의 성장 과정을 조망했다. 이후 정치국은 열흘 동안 일곱 차례에 걸친 토론회를 열고 이 문제를 중점 논의했다.

결국 2004년 설날 직후 '대륙의 굴기'를 제작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정치국 집단학습의 결과가 가시적인 성과로 인민들 앞에 나타난 첫 사례다.

최근의 38차 회의에서는 '인터넷 장악법'을 집중 공부했다. 중국인터넷협회(CNNIC)가 "중국의 네티즌은 1억37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0%를 돌파했다"고 발표하기 하루 전이다. 정치국이 이 자료를 미리 입수해 학습주제로 삼은 것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인터넷 파워를 당과 정부가 장악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구체적인 대책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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