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느낌] 휘황찬란…그 뒤엔 비틀린 가족관계와 피비린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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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장이머우 출연:궁리.저우룬파.저우제룬

장르:무협액션드라마 등급:18세

20자 평:참으로 비싸고 화려한 사이코 가족드라마

'영웅' '영인'의 감독 장이머우가 연출한 대작이라는 점에서 '황후화'는 스케일 큰 볼거리로 관객을 유인할 법한 영화다. 정작 이 영화에서 거대한 스케일은 일종의 배경이다. 이야기의 힘은 가족 내부의 애정구도에서 나온다. 비틀릴 대로 비틀린 이 집안, 한마디로'콩가루 5분 전'이다. 가슴 곡선을 한껏 강조한 궁녀들의 차림새나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궁궐 장식은 그런 이들이 막강한 권력의 황제 일가라는 것을 깨우쳐 준다.

우선 어머니인 황후는 의붓아들인 태자와 몇 년째 불륜관계다. 아버지인 황제는 이런 아내를 서서히 독살하려 한다. 본래 무관 출신인 그는 본처를 버리고 공주였던 지금의 황후와 결혼했다. 이후로도 살뜰한 애정은 없었다. 장남인 태자는 대권에는 별 욕심이 없다. 대신새로 생긴 젊은 연인에게 빠져 황후를 멀리하려는 참이다. 황제의 후계자라면 둘째 아들이 더 적합해 보인다. 전쟁터에서 활약하다 막 궁에 돌아왔다. 황후의 친아들인 둘째는 어머니의 불륜은 알지 못한 채 아버지의 압제에 저항하는 시도에 동참을 권유받는다. 그리고 이 가족의 막내인 셋째 왕자가 있다. 아직은 소년티가 나지만 엄마와 큰형을 지켜보는 눈빛은 심상치 않다.

'황후화'는 가족 간의 비틀린 애정 갈등과 그 파국을 단 이틀의 시간 동안 보여준다. 음력 9월 9일 중양절, 하늘과 땅의 양기가 극에 달하고 노란 국화가 만개하는 큰 명절이 코앞인 시점이다. 대작이면서도 인물설정과 전개과정을 명료하게 압축한 점은 이 영화의 이야기를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영웅'에서 그랬듯 '황후화'의 막강한 황제 권력은 장이머우 감독이 중국 정부의 현존하는 힘을 추인하는 영화를 만든 게 아니냐는 혐의를 부를 법하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자. 이 황제는 '백성을 위한다'는 식의 인사치레 한번 입 밖에 내는 일이 없고, 가족에게도 합당한 존경과 애정을 받지 못한다. 대의명분이 없는 것은 황후도 마찬가지다. 황제든 황후든 그 행동의 동기는 자신을 위해서다. 그런 황제와 황후가 손을 맞잡고 '충.효.예.의'를 써 내려가는 모습은 참으로 거대한 가식이다.

동기는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그들이 최고권력자인 탓에 결과는 무지막지하다. 궁궐 안에 피바람이 몰아치자 궁궐 마당에 깔아놓은 국화 화분이 사정없이 짓밟히는데, 수만 명 병사의 운명 역시 딱 그 짝이다. 45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스케일로 보이는 장면이 바로 여기다. 특히나 병사들의 시체가 쓰레기 치우듯 싹쓸이된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중양절 행사가 이어지는 장면은 섬뜩하기 짝이 없다.

최근 내한했던 장이머우 감독은 이 영화에서 정치적인 함의를 유추하려는 질문에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엄마.아빠의 불화만큼 자식들의 미래를 가로막는 것도 없다는 이야기 아닐까.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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