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의 화약고”에 불안한 눈길/유고사태와 유럽의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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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독립 불인정”재확인… 설득력은 없어
「유럽의 화약고」로 일컬어지는 유고슬라비아의 연방붕괴사태를 맞아 유럽전역에 불안과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유럽국들은 이번 사태를 탈냉전이후 유럽평화에 대한 최대의 위협으로 받아들이면서 어떻게든 유고연방이 와해되는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 한다는데 일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공화국의 독립선언으로 이미 붕괴상태에 들어간 연방체제의 존속을 돕기위해 유럽국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게 사실상 거의 없다는 무력성은 유럽국들의 불안과 우려를 더욱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발칸의 불안은 곧 유럽의 불안이라는 역사적 교훈을 잊지 않고 있는 유럽국들은 이번 사태를 앞두고 개별공화국의 유고연방탈퇴를 인정치 않겠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해왔다.
지난 17일과 23일 룩셈부르크에서 모인 EC(유럽공동체)외무장관들은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하더라도 이 두공화국을 주권국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의견을 통일했고,지난주말 유고를 방문한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도 『유고의 불안과 분열은 유럽 전체에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EC외무장관들과 같은 입장을 피력했다.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25일 두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하자 유럽각국들은 이 두 공화국에 대한 불인정입장을 재확인 하면서 사태발전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프랑스의 롤랑 뒤마 외무장관은 독립움직임이 대결로 이어질 가능성에 유의하면서 연방체제의 존속을 위한 연방정부와의 협상재개를 두 공화국에 강력히 촉구했다.
이 두 공화국의 독립선언에 따른 내전발발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영국은 유고연방정부군에 신중한 자세를 촉구하는 한편 두 공화국에 대한 독립불인정 방침을 공식발표했다.
유럽국들의 대부분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두 공화국에 대해 자제와 대화를 촉구하는 입장인데 비해 역사적으로 이들 두나라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이 두 공화국의 독립움직임에 동정적인 입장을 보여 대조를 이루고 있다.
특히 슬로베니아와 맞붙어 있는 오스트리아는 이번 사태와 관련한 서방국들의 근시안적 태도를 비판하면서 슬로베니아의 독립선언을 지지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어 과거 중부유럽에서의 역사적 지위회복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도 하다.
유럽국들이 일치된 목소리로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해결을 유고슬라비아의 각공화국정부에 촉구하고 있지만 일촉즉발의 현 위기상황에서 이러한 요구는 현실적인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는 점을 유럽국들 스스로도 잘 인식하고 있다.
더욱이 독립을 선언한 두 공화국에 대해서만 자제를 촉구하는 것은 곧 세르비아의 패권주의를 사실상 인정하는 꼴이라는 자각은 유럽국들로서 큰 딜레마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현상황에서 유고연방의 존속만을 요구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외면한채 당장 눈앞의 위험만 피하면 된다는 식의 단견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지는 26일 사설에서 유고사태에 대한 서방국들의 정책적 자세는 유고의 불안을 부채질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조만간 서방국들은 발칸 소국들의 독립움직임에 대해 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법으로 대응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독립을 추진하는 정부가 완전히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이며,소수민족의 권리를 완벽하게 보장하고 국경을 일체의 변경없이 유지하는등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킬 경우 독립을 인정하는 방향으로의 정책변화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근본적 해결책없는 현상유지 요구는 곧 폭발을 의미한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태로 유고의 내분이 가속화될 경우 지난주 베를린에서 합의된 CSCE(유럽안보협력회의)의 분쟁방지센터가 기능을 시험하는 첫번째 기회를 갖게 될 것으로 유럽국들은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태가 없기를 바라면서 유럽국들은 유고의 활화산에 불안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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