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이슬 맺힌…』낸 이시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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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호수에 작은 돌맹이 하나 던져 둥글둥글 파문을 일으키듯, 그런 감동의 울림을 지닌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옳은 이야기 옳게 주절주절 늘어놓아 발언만 있고 예술은 없는 시가 아니라 현실의식과 예술감각이 함께 어울려 긴장을 유지하는 짧은 시로 독자에게 다가서고 싶었습니다.』
시인 이시영씨(42)가 네 번째 시집 『이슬 맺힌 노래』(들꽃세상 간)를 펴냈다. 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씨는 『만월』 『바람 속으로』 『길은 멀다 친구여』 등의 시집을 펴내며 민중적 삶의 원형과 정서, 그리고 짧고 예리한 현실의식의 시를 추구해왔다. 80여 편의 시가 실린 이번 시집에서는 이씨의 전통적 정서 내지 예술감각과 현실의식이 더욱 짧은 형태로 응축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누구의 날지 못한 마음이/저토록 수많은 종이 학을 접어 날렸나/깊은 겨울 이른 아침 매서운 칼바람에 창문을 고쳐 닫다가/아 저 눈밭에 가쁜 숨을 몰아대며 추락한/누군가의 아기학 아기학 아기학들…….』(『학』전문)
비상을 꿈꾸다 추락한 수많은 학들. 「매서운 칼바람」으로 하여 이 학들은 왜곡된 현실과 역사에서 자유를 꿈꾸다 스러져간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지극히 절제된 시적 언어들은 이 시를 단순히 현실의식 시로서만 읽히기를 거부한다. 「가쁜 숨을 몰아대며 추락한」것들은 또 우리의 젊은 날의 사랑과 희망, 인간의 근원적 꿈을 접어 날리던 「아기 학」아닌가. 때문에 이 『학』은 정치·현실적 자유가 부당한 권력에 의해 박탈당하는 것과 함께 인간 혼의 원초적 자유로움이 이러저러한 삶의 제약 때문에 쓰러져 가는 안타까움을 동시에 포착해내고 있는 시로 볼 수 있다.
『현실을 보는 눈과 예술적 형상화는 일치하게 마련입니다. 일부 젊은 시인들의 시가 상투적으로 흐른다는 비난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현실을 단선적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상투적 눈에 기인된 것입니다.』
언어를 지극히 절제, 군더더기를 털어 버림으로써 혼과 현실의 양극적 진실을 동시에 추구하는 학의 다리뼈로 만든 피리 같은 시를 쓴다는 평을 받는 이씨. 계간 「창착과 비평』 주간으로서 현실참여문학의 전선에 서 있으면서도 이씨의 이러한 「학골적」시 세계는 바로 『구구절절이 옳은 이야기지만 예술적 혼이 없다』는 일부 젊은 시인들의 참여시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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