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자기조절 능력 가진 생명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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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미시시피주를 덮쳐 고속도로의 다리를 무너뜨렸다. 교각 부위만 남은 모습이 사다리 같다. [AP=연합뉴스]

찬물을 들이켰다고 사람의 체온이 급히 내리가지는 않으며, 온탕에 들어갔다고 체온이 급히 오르는 것도 아니다. 인체는 36.5℃를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다. 이것이 생물체가 생리 조건을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 즉 항상성이다. 항상성은 생명체를 무생물체와 구별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자동 조절 시스템으로 생명체의 항상성이 유지된다면 바닷물 같은 무생물은 어떻게 일정하게 염분 농도를 유지할까.

이 질문에 답한 사람이 '가이아'의 저자인 영국의 대기과학자 러브록(1919~ )이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에서 이름을 빌린 이 책의 핵심 내용은 본질적으로 지구를 '자기 조절 기능을 갖춘 하나의 생명체'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러브록은 지난 30억 년 동안 대기권의 원소 조성과 해양의 염분 농도가 거의 일정하게 유지돼 왔다는 사실에 주목해 그 항상성의 비밀을 생물의 존재에서 찾았다.

그는 탄소.질소.인.황.규소 등 지구를 구성하는 주요 원소들이 대륙과 해양을 오가며 순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 메커니즘이 전적으로 생물에 의해 통제된다는 것이다. 바닷물의 염분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것은 그 속에 사는 생물들의 작용이라는 얘기다.

이런 실례들을 들어 저자는 지구 차원에서 균형 조절 시스템의 존재를 확신해 이를 '가이아'라고 이름 붙인다.

가이아의 세계에서 인간은 지구의 주인도 관리인도 아니다. 비유하자면 인간은 지구라는 하나의 유기체를 구성하는 세포다. 그러나 수많은 생물 종이 멸종하는 상황에서 인류의 숫자가 60억을 넘는다면 인류는 지구라는 생명체에 기생하는 암세포가 아닐까. 암세포의 활동, 곧 인간의 산업 활동으로 생긴 환경 오염은 지구 생명체의 이상을 초래한다. 온실가스의 배출로 생기는 지구 온난화가 그것이다.

2005년 미국의 주요 정유 시설이 몰려 있는 멕시코만 일대를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환경 운동가들은 '가이아의 경고'라고 표현했다.

미국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꼽는 온실 가스 최대 배출국이면서도 온실가스 주 배출원인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 사용을 감축하기 위한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해 온 것에 대한 보복이라는 논리다.

러브록은 온난화가 부른 재앙으로 죽음을 피할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강력하게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원자력을 그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원으로서 원자력은 언제든 가공할 무기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지구라는 거대한 생명체의 일원으로서 인간은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함을 역설하는 러브록의 메시지는 환경 문제로 몸살을 앓는 현실에서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

김보일(배문고 교사·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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