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커지는 조계종 내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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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 종단이 최근 들어 심각한 내분의 형세를 드러내고 있다. 6개월째 궐위상태인 종정추대무제를 직접적 실마리로 한 이 내분은 종정선출의 방법론을 둘러싼 원로와 종회간의 대립에다 급기야 서의현 총무원장 퇴진까지 거론되는 종권 싸움이 얽혀 갈수록 긴장감을 더해가고 있다.
종정추대문제와 관련, 원로측은 88년의 종헌·종법 개정 때 종정 추대에 관한 부분을 인준한 바 없기 때문에 『종정추대위원회에 의한 종정선출은 원천적으로 효력을 가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달초 새 원로회의 의장으로 당선된 송서암 스님은 취임회견에서 『종정추대는 원로회의의 고유권한』이란 당초의 기본입장을 재차 확인한바 있다.
지난달 1일 해인사에서 원로·선원·비구·승가대 학생 대표들이 모여 결성했던 종단 수습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송서암 스님)도 15일 서울조계사에서 첫 공식모임을 갖고 필요하다면 초법성을 갖는 승려대회를 소집해서라도 「원로회의에 의한 종정추대」를 관철시킨다는 내용의 결의를 채택했다. 이날 회의에는 위원장인 송서암 스님을 비롯해 성수·현해·성현·인각·범일 스님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원로회의에 의한 종정추대를 주장하는 측에 맞서 종헌·종법에 따라 구성된 추대위원회가 종정을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도 만만찮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모임이 일주회. 지난해 여름종회 초선의원 12명으로 결성됐던 일주회(회장 법장 스님)측은 지난달 27일 종회 사무처에 「조계종 현안문제처리를 위한 임시중앙 종회 소집」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 제도권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 모임과 의견들을 종회에서 일괄 수렴할 것을 주장했다. 일주회측은 종회 사무처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13일 다시 모임을 갖고 의원들을 대상으로 종회 소집을 위한 서명운동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월탄 스님을 비롯한 교구본사주지 9명도 18일 직지사에 모여 「조계종본사주지협의회」를 구성, 『6개월간 궐위가 계속되고 있는 종정을 하루속히 현행 종헌 종법대로 추대할 것』과 『원로스님들의 뜻을 수렴하기 위해 조속히 종회를 개최, 제반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17일 오후에는 조계사에서 총무원이 소집하는 또다른 본사주지회의가 열렸다. 25개 교구본사 중 20개 본사주지가 참석한 이날회의에서는 서의현 원장을 중심으로 굳게 결속, 충무행정을 일사불란하게 추진할 것, 종정을 종도대중의 여망에 따라 원로측에서 추대할 것 등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회의에 참석한 주지들은 또 종단문제해결을 위한 「본사주지연합회」를 결성, 회장에 대흥사주지 도성스님을 선임했다.
종점추대문제를 둘러싼 이같은 일련의 대립적 모임 외에 종권문제와 관련, 현 서의현 총무원장의 퇴진을 거론하는 세력까지 등장, 사태가 복잡하게 얽혀들고 있다.
지난 9일 대전 유성리베라호텔에서는 서정대 종회 의장의 주선으로 황진경·정초우·서벽파·조성파·이진철·김능혜·김종상·김법장·황일면 등 중진급 스님 19인이 모여 회의를 가졌다. 이들은 종단내부의 현안들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과정에서 능혜 스님을 위원장으로 하는 7인 대표위를 구성,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현 서의현 총무원장의 퇴진을 권고키로 결의했다. 이들이 원장을 직접 만나 퇴진을 권고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7일 서울 뉴월드호텔에서 다시 모임을 갖고 참석자 20명으로 「종단정화중흥회의」(회장 김능혜 스님)를 결성함으로써 원장측과의 대립을 통한 일대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중흥회의」측은 본사주지협의회 및 일부 종회 의원들과 오는 21일 연대회의를 열어 임시 종회 소집을 요구하는 한편 현 총무원장체제에도 전하는 새로운 진로를 모색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정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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