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이 대선 예행연습장인가/박보균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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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풀뿌리민주주의를 다지는 광역의회선거가 가장 우려할만한 양상인 대권 전초전으로 변질되고 있다.
전국을 순회하며 대권 재도전의 집념을 풍겨온 김영삼 민자당대표와 김대중 신민당 총재가 14일 오후 각자의 본거지에서 대규모 집회를 갖고 대통령선거 예행연습하듯 속마음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김대표는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고 꿈이 있으며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눌 그날까지 전진하자』고 대권에 대한 도전가능성을 비추려 했다.
광주에서 김대중 신민총재는 더욱 노골적으로 『이번 선거는 물론 내년에 있을 국회의원선거,자치단체장선거때까지 일치단결해 내년말의 대통령선거에 대비하고 일사불란하게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양쪽 당원단합대회장은 각각 「김영삼」「김대중」 구호로 가득찼고 「우리의 자랑,부산의 희망 김영삼」「가자! 김대중과 함께 민주정치시대로」란 현수막속에 지난 대통령선거 유세장의 모습을 그대로 흉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외침과 수만명의 인파를 동원한 세과시 싸움속에 광역선거의 참뜻과 순수성은 구겨지고 있다.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돼온 중앙정치의 예속,대권도전의 발판으로 지자제가 굴절돼 버린 것이다.
지자제를 주민자치와 지역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누구보다 앞장서 강조해온 두 정치지도자들이 스스로 이런 의미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자신들의 아성에서 본격 대중집회를 처음 갖는 김대표와 김총재는 대회장의 열기를 측정하느라 지자제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는 눈치였고,대통령에의 꿈을 새삼 다지듯 상기된 모습들이었다.
양김씨의 발언엔 3당통합,내각제논쟁,「안정」논쟁만 새롭게 추가되었을뿐 호소의 본질은 예전이나 마찬가지로 전혀 바뀌지 않았다. 『부산은 나를 키워준 고향이며 올때마다 고마움과 정다움을 느낀다』(김대표),『이번 선거는 여러분의 30년 한맺힌 집권을 하느냐 못하느냐의 계기』(김총재)라는 발언의 밑바닥에는 지역감정을 자극하려는 속셈마저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광역선거가 이처럼 대권도전의 기회로 활용된다면 지자제의 앞날은 어떨 것인가. 중앙정치의 파행상을 그대로 주민자치에 옮기려는 정치지도자들의 행태는 어쩔 수 없이 정치불신을 낳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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