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숙청으로 개혁 뒷받침/알바니아 비공산연정 구성 배경(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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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집단탈출 사태가 도화선/국민감정 무마위한 자구적 조치/파탄직전 경제회복에 성패 달려
알바니아 집권노동당(공산당)은 12일 3일동안 열린 제10차 당대회를 마치면서 당의 권력독점포기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새 당강령 및 규약을 채택,「당의 전면쇄신」을 선언하는 한편 당명을 알바니아 사회당(ASP)으로 개칭했다.
이와 함께 직권을 남용하고 직무를 태만한 고위 당직자들을 숙청,정치국원 2명을 포함한 당고위간부 9명을 제명처분하고,정치국원 1명을 포함한 당 중앙위원 8명을 해임했다.
이같은 숙청은 당대회 개막전 『고위인사 95%를 교체하겠다』고 한 당지도부 공언이 현실로 나타난 것으로 전후 알바니아 정치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숙청된 인사들은 하나같이 당내 강경보수파 인사들로 국내외적으로 궁지에 몰린 당지도부가 극적인 개혁의지를 내외에 과시하기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이번 조치를 보수­개혁간 권력투쟁에서 개혁파 승리라는 통상적 해석보다는 궁지에 몰린 당지도부가 대대적 당내 인사개편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사용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은 판단일 것이다.
이같은 판단의 근거로 들수있는 것은 현재 알바니아가 당면한 정치·경제적 위기상황이다. 최근 알바니아 정정은 파국직전이라고 할만큼 심각하다.
46년동안 「순수사회주의」를 고집해온 알바니아는 그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유럽 최빈국이란 불명예가 붙여져왔다. 89년 동유럽을 휩쓴 민주화혁명의 폭풍속에서도 알바니아는 별다른 동요없이 이데올로기적 순수성을 지켜나가는듯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출국허용을 요구하는 수천명 알바니아인들이 수도 티라나의 외국공관에 난입하는 사태가 벌어졌고,이어 12월엔 생활조건개선과 민주화개혁을 요구하는 대학생 데모,그리고 알바니아인 3천명이 그리스로 집단탈출함으로써 대변화의 시작을 보였다.
특히 주민집단탈출은 올해들어 더욱 심각해져 지난 3월 알바니아인 2만명이 선편으로 이탈리아로 집단망명,알바니아­이탈리아간 외교문제로까지 발전됐다.
이에 대해 알바니아정부는 정치범석방·다당제 자유총선을 약속,지난 3월 46년만에 처음으로 자유총선을 실시했다.
총선결과 노동당은 3분의 2 의석확보에 성공했으나,라미즈 알리아 인민의회간부회의장이 티라나에서 낙선하는등 노동당은 고전을 면치못했다.
총선후 노동당은 야당에 연립정부구성을 제의했으나 야당이 이를 거부,젊은 개혁파 파토스 나노총리가 이끄는 공산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새 공산정부에 대해 독립노조가 반기를 들고 나섰다. 노조는 생활개선·임금인상,그리고 지난 4월 슈코데르에서 발생한 시위군중 살해책임자 처단을 요구하고 25일동안 약 35만명이 참가하는 전국적 파업을 단행,나노총리정부를 퇴진시켰다.
신임총리로 임명된 온건개혁파 일리 부피는 11일 야당이 전체 각료직의 절반을 차지하는 연립내각을 구성했다. 부피총리는 특히 경제담당 제1부총리와 국방장관직을 야당인 민주당에 할애함으로써 거국내각이라는 성격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때 이번 당대회에서 보여준 노동당의 전례없는 쇄신은 정부차원에서 이룩한 개혁분위기를 당차원에서 뒷받침함으로써 이반된 국민감정을 돌이키는 한편 개혁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자구적 성격의 조치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에도 불구,앞으로 해결해야할 난제들이 산적해있다. 특히 경제는 파국직전상황이다.
지난 3년간 알바니아인들의 생활수준은 50%이상 하락했으며 월평균급료 5백레코(미화50달러)에 쌀·밀가루·육류·설탕·코피등 주요식품을 배급제에 의존하고 있다.
부피총리는 현재 알바니아가 처한 위기상황을 넘기기위해선 1억달러어치의 식량 및 원자재가 필요하지만 현재 확보된 재원은 1천만달러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같은 악조건에서 50%임금인상,주 5일근무,작업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근로자들이 언제 파업을 재개할지 모르며 주민집단탈출사태가 다시 시작될지 모르는 위기상황이 계속되고 있다.<정우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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