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시행 위해 입법예고한 상법 개정안 재계 반대하면 도입 재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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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김성호 법무부 장관은 11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경제의 발목을 잡는 법과 규제가 있는지를 알기 위해 기업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겠다"고 말했다. 재계 대표들은 "상법 개정안의 쟁점인 이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면 기업의 도전의욕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 장관이 전경련 주최 간담회에 초대받아 참석한 것은 이례적이다.

#장면2=기업 관련 법제 개선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김준규 법무부 법무실장은 최근 중소기업 경영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출받을 때 필수적인 연대보증제도가 신규 투자 등 창의적인 기업활동에 지장을 준다"는 하소연을 들었다. 연대보증 절차가 번거로운 데다 보증을 부탁하는 것도 만만치 않아 대출받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이 같은 연대보증 관행을 제도적으로 금지할 필요성이 있는지를 중장기 연구과제로 채택했다.

법무부가 김 장관 주도로 '기업 하기 좋은 법적 환경 조성'을 적극 추진 중이다. 업체 관계자를 직접 접촉해 기업경영상 장애요소 등을 들은 뒤 연구 검토 주제를 수집하고 있다. 김 장관이 "법무부가 부당한 규제 철폐에 나서 기업을 도와야 한다"며 '유연한 기업관'을 강조하면서 법무부의 분위기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기업 눈높이 맞춘 정책=김 법무실장은 "기업 현장을 찾아 문제점을 합리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는 법 규정 등을 발굴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관 부서인 법무심의관실에는 상법 개정안을 다루는 상사팀을 비롯해 담보제도 개선 연구반 등 분야별 태스크포스가 구성돼 있다. 현재 3개 반으로 운영 중인 연구반이 올해 안에 6개로 확대 개편될 예정이다.

담보물 제도 개선, 소송 남발 방지 대책은 올해의 중점 과제다. 정부 부처 중 관계 법령에 대한 자문과 해석을 주관했던 법무부가 경제 살리기를 위해 현장 중심으로 변신했다는 것이 재계의 평가다. 법무부는 이를 위해 상법 전공 교수나 중소기업청 등의 전문가와 접촉하는 것을 비롯해 법원이나 다른 정부 부처와도 협의하고 있다.

법무부는 또 올 상반기 시행을 목표로 입법예고한 ▶이중대표소송제 ▶집행임원제 ▶회사기회의 유용 금지 등을 신설하는 상법 개정안도 도입 자체를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재계.시민단체.학계 대표가 참여하는 '상법 쟁점사항 조정위원회'를 구성해 원점에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에서 사회적 합의와 설득을 보다 중요시하겠다는 것이다.

◆모럴해저드 방지 대책도 고려=법무부의 고민은 섣부른 '친기업적 접근법'이 기업 경영에서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법무부가 중장기 과제로 정한 '양벌 규정'의 손질 작업도 마찬가지다. 양벌 규정이란 회사 직원의 과실이 있을 때 회사와 회사 대표를 함께 처벌하는 것으로 환경.건축.노동관계법 등에 300여 개의 조항이 있다고 한다. 법무부는 양벌 규정의 유형과 내용을 분석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동안 대한상공회의소 등에서는 "불법행위가 발생하면 무조건 최고경영자(CEO)에게 공동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대형화된 기업 환경에 비춰 불합리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국가청렴위원회나 시민단체 등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부정부패 등을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법무심의관실 박성근 검사는 "회사 대표가 지휘감독을 제대로 못한 경우에 한해 양벌 규정을 적용하는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 대표의 연대보증 관행 개선 문제도 마찬가지다. 업계 일각에서는 "연대보증을 법령 등으로 금지할 경우 담보능력이 부족한 영세 업체들은 돈을 빌릴 수 없어 자금줄이 오히려 막힐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금융기관 등에서는 "회사 대표 등 기업인에게 경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부작용도 있다"고 말했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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