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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경제교육을 확 바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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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학교 경제교육에 대한 실망으로 최근 정부.언론.경제단체.시민단체 등에서 새로운 형식의 경제교육을 제안하고 있다. 서점가에는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경제교육 도서가 넘쳐난다. 그러나 '부자 만들기'식의 투자.재테크 교육이나 기업과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지나치게 옹호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기존 경제학 이론 위주 교육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고 화려하게 새 단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명한 투자교육이나 시장경제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교육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투자교육을 강조하면 학생들에게 부자가 돼야만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것이라는 그릇된 경제관을 심어줄 수 있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몇 명이나 빌 게이츠.소로스와 같은 기업가.투자가가 될 것인가. 그리고 그런 부자가 되지 않는다면 실패한 인생인가.

우리 경제에서 기업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며 개인의 경쟁심.자율에 기반한 시장경제 체제가 풍요로운 생활을 가져다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경제주체에는 기업 이외에도 소비자.정부가 있다. 시장경제에서 효율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형평성이다. 형평성이 무너지고 효율성만 존재한다면 자유시장경제 자체의 존립이 위태롭다. 따라서 경제교육은 학생들에게 효율성.형평성이 조화를 이루는 경제관을 심어줘야 한다.

이같이 우리 사회는 경제교육에 대해 합의가 없는 상황이다. 다양성도 중요하지만 중구난방은 곤란하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 경제교육의 역할과 책임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꼬마 경제학자를 키우는 기존의 원론식 교육이나 한탕주의.부자되기식 투자교육은 안 된다. 경제학과 경제교육은 분명히 다르다. 실물경제 위주로 생생한 정보와 함께 경제학 내용이 교육돼야 한다. 언론이나 경제교육 단체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많은 도움이 되고, 학교 경제교육 커리큘럼 편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모의 창업 프로그램은 '기업의 역할', 소비자보호단체 정보는 '소비자 주권', 은행단체는 '화폐와 통화' 단원에서 활용될 수 있다.

경제교육을 하고 있는 기관.단체들도 자신들만의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해 특화시켜야 한다. 뚜렷한 방향성 없이 이것저것 나열.제시하지 말고 특정 분야에 집중 투자해 양질의 정보를 생산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경제교육의 다양성을 살리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현재 재정경제부.한국은행 등 많은 정부기관이 경제교육 사이트를 각자 운영하고 있지만, 특색 없이 생색내기식에 불과하다. 비효율적이고 예산 낭비다. 사이트를 통합 운영하면 교사.학부모.학생들이 더 쉽게 경제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은 꼬마 경제학자나 이재(理財)에 밝은 부자가 아니다. 저축의 미덕과 노동의 소중함을 알며, 자신의 신용상태를 점검할 줄 아는 '비판정신을 갖춘 건전한 생활경제인'을 길러낼 때 경제교육은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성경희 국립국악학교 교사.사회과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