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를 다시 알자 연구서적 출판 홍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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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랫동안 연구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던 중남미일. 최근 이 대륙에 관한 연구서들이 잇따라 발간돼 눈길을 끈다.
『라틴아메리카 자본주의 논쟁사』(까치간·이성형 지음), 『자본주의 체제 하의 사회변혁운동』(친구간·강문구 엮음), 『라틴아메리카의 민주주의』(새날간·JA 필러 지음), 『라틴아메리카의 도전과 좌절』(나남간), 『격동하는 라틴아메리카』(세진사간) 등이 불과 6개월 사이 선보여 작년 말 이후 부쩍 늘어난 이 지역에 관한 높은 관심을 엿보게 한다.
출판계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두고 두 가지 방향으로 설명한다.
첫째 6·29이후의 민주화약속이 실종되고 경제마저 구조적 모순이 심화되자 지난해 초부터 대두된 「제2의 아르헨티나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다분히 관제성 짙은 슬로건이 가능성 높은 경종으로 국민들간에 확산되고, 둘째 종속이론·군부쿠데타·사회주의 실험·해방신학운동 등 중남미적 정치경제 상황에서 나온 이론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는 학계의 강렬한 욕구에서 비롯됐다는 풀이다.
앞서 열거한 책들 가운데 가장 최근에 출간된 『격동하는 라틴아메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도전과 좌절』 등 2권이 관심영역의 폭과 내용에서 특히 주목된다.
김병국·서병훈·유석춘·임현진 교수 등이 공동 편집한 『라틴아메리카의 도전과 좌절』은 근대학이론·종속이론·조합주의·관료적 권위주의·신자유주의 등 이 지역에서 실험됐거나 태어난 개발모델과 다양한 시각을 소개하고 중남미 연구가 갖는 사회과학적 의미를 강조한 이론서.
『중남미의 장래는 포괄적 의미의 민주화가 진척되는 바탕 위에서 경제발전을 위한 독자적 모델을 찾아낼 수 있는가의 여부가 운명을 좌우한다』고 전망하고 『외래지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입해온 과오를 반성하면서도 자생적 모델의 개발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실정에서 구조화된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실천적 대안들을 꾸준히 제시하는 이 지역에 대해 계속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격동하는 라틴아메리카』는 이은윤·문일현·최재영씨 등 세 명의 중앙일보기자들이 90년 2월10일부터 50일간 6개국을 기획취재, 「중남미 영광과 좌절」이라는 제목으로 장기 연재했던 내용을 대폭 보완했다.
이 지역에서 자체 개발된 패러다임들인 해방신학·종속이론·의식화교육론 등이 제기해온 문제점들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현장상황 중심으로 기록했고, 오늘의 비극을 낳은 역사문화적·정치경제적 배경들에 대해서도 입문적이나마 정확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 책은 중남미 좌절 원인을 군사정권의 권위주의 체제, 가톨릭 교회, 낙천적인 국민성 등 내적 요인과 서구경제로의 종속화, 다국적 기업의 신식민구조 등 외적 요인으로 압축한다.
또 구조적 모순을 예리하게 지적하면서도 이 대륙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결론을 내린다.
풍부한 부존자원, 다양한 정치경험, 가톨릭교회보다 수적으로 많은 해방신학의 기초공동체, 새롭게 싹트는 젊은이들의 고향개척의지 등 변혁의 변수도 많지만 역동성이 넘쳐흐른다는 것.
따라서 북방일변도로 치닫는 우리의 정치·경제·외교관심을 남방으로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이익의 핵심인 경제적 측면에선 중남미가 동구 등 북방 못지 않게 중요하며 특히 자원에 관한 한 남방이 북방을 압도한다고 설명한다. <최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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