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힘으로 「주장」을 막을 셈인가-홍정선씨, 김지하 제명 부당성 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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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민족문학 작가회의에서 1989년5월 발표한 한 성명서에는 이런 구절이 들어있다. 『…「노동해 방문학」에 실린 몇 편의 글을 문제삼아 그 발행인 김사인씨와 편집국장 임규찬씨를 불법연행, 구속하기에 이른 것은 현재의 질곡을 그대로 온존시키겠다는 정부 당국의 반역사적 의지의 표명으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사상 표현의 자유를 철저히 압살하고 이땅의 민주주의를 말살하겠다는 전 민중에 대한 선전포고라 판단된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나온 작가회의의 이름이 모두에 놓인 한 시국선언문에는 『사상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기제의 철폐투쟁에 앞장서고』라는 구절과『완전한 사상표현의 자유를 우리 힘으로 쟁취하자』는 구절이 들어있다.
작가회의 기관지였던 『민족문학』에 실려 있는 이 같은 구절들 중 특별히 필자의 시선을 끄는 것은 「모든 기제」「완전한 사상표현의 자유」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 말들을 통해 말의 순수한 논리성만을 따를 때, 작가회의가 어떤 사람이 표현한 것을 가지고 그 사람을 물리적로 억압하는 모든 방식에 철저히 반대하는 단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까닭이다.
양식있는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사상과 양심을 표현하는 어떤 행위가 실정법의 제재를 받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예술적 형상화의 방식이 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는 것을 분명히 싫어한다. 그것은 작가들이 물리적 제재를 두려워해서라기보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양심적 고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자기 작품의 어느 구석에서 권력이 정해놓은 테두리의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양식있는 작가들에게는 육체에 가해지는 모욕 이상의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그것은 외부의 억압이 필연적으로 스스로의 용기와 결부된 내면의 억압으로 전화하는 까닭이다. 자신의 머리 속을 스친 언어가, 자신의 손길을 거친 색채가 이미 보이기 않는 힘의 조종에 의해 순치된 것들이라는 생각은 작가를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이 때문에 작가들에게는 「억압의 모든 기제가 철폐된 완전한 자유」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런 맥락에서 이상의 시를 발표시켜주기 위해 사표를 호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녔다는 한 신문기자의 에피소드와 프로이드마저 재해석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학회로부터 파문 당한 라캉의 경우를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인다. 이상의 시가 마음에 들건 안들건 간에, 정신분석학의 원조인 프로이드의 권위가 어떤 것이건간에 우리는 여기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사람들의 고통스런 노력을 읽어야 한다. 이런 점은 김지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주장이 지금 현재 어떤 영향을 미치건간에 우리가 그를 조직의 힘으로 억압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의 말에 우리가 동의할 수 없다, 있다라는 견해를 제시하는 것이어야지 그를 재판하고 처형하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권력보다 먼저 크고 넓어져야 한다.
필자의 귀에는 아직도 「김지하는 배신자입니까?」라는 한 1학년 학생의 적나라한 물음이 쟁쟁하게 울려온다. 필자는 그 섬뜩한 질문을, 그 같은 「배신자」라는 용어를 순진한 학생이 구사하게끔 만든 분위기를 억압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백주에 현정권에 도전하는 한 학생을 타살하게 만든 권력의 분위기를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문제점을 -그것이 비록 동의할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제기한 사람을 말로써 죽이려는 행위 역시 폭력적이 아닌지 반성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김지하의 비판이 우리 스스로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고통에 직면해서도 기꺼이 스스로 분석 당하기로 마음먹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외적인 표현의 자유를 확보하려는 내적인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옳다.
이 사직에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개인 사정으로 작가회의의 운영에 한번도 참석하지 못한 필자로서는 지금의 작가회의가 양심과 사상의 문제에 대한 앞에서의 신념을 수정했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작가회의가 어떤 문학적 이념의 알맹이를 내세우건간에 이 단체는 문인들의 모임이란 사실이며, 문인들의 모임인 한 기본적으로 김수영이 말한바 있는 절대적인 「자유의 언어」에 대한 이상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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