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 외교 아카데미' 세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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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한국 외교=지난 4년 동안 한반도의 전략환경은 급변했다. 북한 핵실험과 체제 위기, 주한미군 재편, 중국의 급부상, 일본의 군사대국 조짐, 에너지를 축으로 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 이 와중에 한국 외교는 기로에 섰다.

안보의 기축인 한.미 동맹은 헝클어졌고, 한.일 관계는 최악이다.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는 "설익은 자주와 균형자라는 명분 외교가 나라를 고립시켰다"고 말했다.

반면 주변 4강의 키워드는 실리 외교다. 후진타오(胡錦濤) 체제의 중국은 대표적이다. 남미.중앙아시아.아프리카를 상대로 한 에너지 외교, 미 견제 외교는 백미다. 조지 W 부시 미 정부의 이념 외교 색채는 엷어졌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일본도 실용주의로 돌아섰다.

<4면 그래픽 참조>

외교의 난맥상을 바로잡고 새 전략환경에 대처하려면 '신(新)사고 외교'와 '외교의 재발견'이 불가결하다.

하영선 서울대 교수는 "친외세나 반외세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를 청산하고 조종외교 능력을 키워야 한다"며 "동아시아의 그물망 짜기에 앞장서는 외교전략을 수립할 때"라고 말했다. 한국이 역내 통합자 역할을 선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인권.환경 등에서 국제적 표준에 걸맞은 어른다운 외교를 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무고시로는 한계=정예 외교관 양성도 빼놓을 수 없다. 이홍구 전 총리는 "외교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라며 "외교관이 대한민국이란 비행기의 조종사이자 정비사라는 인식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본지는 이에 외교관 채용.교육을 별도로 맡는 '서희 외교 아카데미' 설립을 제안한다. 현재의 외무고시로는 국제화한 인력 확보는 물론 정예 외교관 육성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외교 아카데미는 2년 석사 과정으로 외교관 후보를 선발(1차 시험)해 교육하고 성적과 시험(2차)을 거쳐 일부를 외교관으로 임용하는 방안.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는 "외교 아카데미는 선발 때부터 전략.통상.특수지역 등 분야로 외교관을 육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보화 등 외교환경의 지각변동도 외교관 전문 양성기관 설립의 근거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정보화시대의 외교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단순 정보만 다뤄서는 안 되며 보다 폭을 넓혀 상대국 지도자와 여론에도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말한다. 외교 아카데미는 외교관의 평생교육원이자 은퇴 외교관의 경험 전수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서희=고려 성종 때인 993년 거란 침입으로 나라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적장 소손녕과 담판해 적군을 철수시키고 강동(압록강 동쪽) 6주를 새로 얻어낸 인물. 당시 조정은 항복론과 땅을 떼주는 할지론(割地論)으로 양분됐지만 이에 반대하고 협상으로 옛 고구려 땅까지 되찾았다. 거란에 대한 일시적 사대(事大)와 실리의 맞바꿈이었다. 서희의 소신과 정확한 판단력, 설득력은 외교관의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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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정치부문 오영환.남궁욱 기자, 국제부문 박신홍 기자, 워싱턴.도쿄.홍콩=강찬호.예영준.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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