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인종­종교대립 다시 폭발/간디피살 이후의 인도 어떻게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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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타밀족 의심… 소수민족 탄압선풍 예상/무차별 보복 나서면 전국 내란 가능성
라지브 간디 전인도총리의 갑작스런 피살은 해묵은 종교·인종·계층간의 갈등이 빚어낸 참사로 풀이된다.
간디가 폭탄테러로 사망한 곳이 종족·종교분쟁의 핵으로 꼽히는 인도남부 타밀 나두주였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더구나 타밀 나두주는 스리랑카 북부 타밀분리주의자들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어 이번 사건이 타밀게릴라토벌에 앞장섰던 인도정부에 대한 타밀족들의 보복행위일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
인도의 고질적인 종교분쟁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인도북서부 펀잡주를 중심으로 회교신비주의를 가미한 힌두교개혁파인 시크교가 탄생하면서부터다.
구루(도사)나나크에 의해 창시된 시크교는 우상숭배를 배척하고 엄격한 신분제도인 카스트제도의 부정을 교리로 삼고 있다.
밝은 색의 터번과 긴수염으로 상징되는 시크교도들은 전사로서 이름을 떨쳐 한때 펀잡주의 지배권을 확보하기도 했으나 19세기중엽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패배,영국령으로 귀속됐다.
인도전체인구의 30%정도를 차지하며 세력을 떨쳤던 시크교는 현재 신도수가 1천5백만명으로 급감,힌두교로부터 심한 탄압을 받고 있는 상태다.
아울러 인도내 타밀족들의 분리·독립투쟁을 진압하기 위해 인도정부는 87년부터 90년까지 스리랑카에 5만명의 군대를 파견,타밀엘람해방호랑이들(LTTE)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왔기 때문에 타밀족들은 간디를 「암살1호」로 지목해왔다.
간디의 이번 피살은 카리스마적 정치지도자가 없는 현재의 인도정국에 심각한 파문을 던지고 있다.
우선 이번 폭탄테러의 배후세력으로 「의심」되는 타밀족등 이교도에 대한 무차별 보복행위를 들 수 있다.
인디라 간디의 피살직후에도 전국적으로 대시크교 테러행위가 잇따라 모두 3천여명의 시크교도들이 목숨을 잃은 전례가 있다.
아직 뚜렷한 범인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힌두교도들이 대시크교·타밀족테러에 나선다면 이들 이교도·소수민족의 반격을 초래,전국적인 내란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더욱이 지난 20일부터 시작된 6일간의 선거기간중 민감한 「선거심리」와 이번 사건이 맞물릴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전망이다.
이미 이번 선거에서 최대당이 확실시 됐던 국민의회당의 총재피살로 선거연기가 결정된 상황이어서 이에따른 정국경색도 우려된다.
라와스와미 벤카타라만대통령이 주도하는 이른바 「공안정국」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그동안 인도 정부의 「눈엣가시」였던 시크교도들은 물론 타밀족을 비롯한 인도내 7개 소수민족들에 대한 대량검거와 탄압열풍이 불어닥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와같은 강경일변도의 흐름을 가로막고 나서는 세력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회교도에 눌려왔던 힌두교의 부흥을 외치며 화려하게 등장한 바라티야 자나타당(BJP)은 모처럼 맞은 정권참여의 호기를 잃지 않기위해 힌두교도들에 대한 「선무공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 88년 총선에서 86석을 확보,비슈와나트 프라탑 싱전정권이 탄생하는데 결정적인 「뒷심」이 됐던 BJP가 폭발적인 힌두교도들의 지지를 업고 정국수습에 적극 나설 경우 의외로 사태수습이 조기에 마무리 될 수도 있다.
최근들어 부쩍 성장한 인도의 중산층들도 나라전체가 흔들리는 것은 원하지 않고 있어 이같은 중산층의 움직임도 변수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간디 가문이 곧 인도정치의 현주소」인 현실을 감안한다면 간디의 피살사건으로 인도정국은 앞으로 상당기간 혼미를 거듭할 전망이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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