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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는 도서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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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시에서 관리하는 이런 공공도서관은 동네마다 있다. 거리를 걷다 문득 읽고 싶은 책이 떠오르면 가까운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린다. 다 읽고 나서는 아무 도서관에나 반납하면 된다. 도서관이 시민들의 놀이와 생활 속에 함께 녹아 있는 것이다.

출판사들이 모여 있는 파주 출판도시의 전망 좋은 한 건물에도 도서관이 들어섰다. '꿈꾸는 교실'이라는 이 도서관은 아이들이 읽을 책만 가득한 게 아니다. 도서관은 울타리를 벗어나 강과 산이 있는 넓은 놀이터로 변신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심학산에서 뛰어놀다 들어와 책을 읽기도 하고, 눈 오는 날이면 샛강변에서 눈싸움을 하다 들어와 책을 본다. 일상과 놀이의 구별이 없는 아이들에게 도서관은 모험과 상상력의 공간이자 놀이터가 된다.

이렇게 놀듯이 즐겁게 책을 읽던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어가면서 서서히 책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강요된 책만을 억지로 읽는다. 중.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논술에 짜 맞춰진 책들의 줄거리만 훑고 지나간다. 대학입시라는 마지막 관문을 혼신의 힘을 다해 통과한 후부터는 공부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또다시 취업 문을 두드리기 위해 실용학문의 쾌속정을 타고 질주한다. 다행인 것은 그나마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책읽기 프로그램이 갈수록 참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큰 문제는 대학생이다. 1970, 80년대 암울했던 독재정치 상황 속에서 어떤 세대보다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대해 고민했던 대학생과 노동자층은 인문사회과학 서적의 핵심 독자였다. 신입생이 동아리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책을 읽으며 선배들과 토론하기 시작했다. 이 점은 대부분의 동아리가 마찬가지였다. 말하자면 자연스럽게 독서 토론이 대학생활 전반에 걸쳐 활성화돼 있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독서는 취업이나 성공을 향한 것이 아닌 진실과 진리를 깨달아가는 순수하고도 자발적인 과정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사회인이 된 그들이 여전히 인문사회과학 서적의 열혈 독자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생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번역서 일색이었던 인문사회과학 분야가 다양한 국내 저술들로 꽃을 피우고, 굵직굵직한 동서양 고전들의 번역이 주렁주렁 열매 맺고 있는 데도 말이다. 따져보면 언필칭 '인문학의 위기'란 '대학의 인문학 위기'인 셈이다.

교육의 목적은 자발성을 키우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그 자발성을 스스로 갖게 하기까지는 시스템화된 일정한 틀이 필요하다. 대학에 독서 토론이 활성화되고 그들이 졸업한 뒤에도 생활 속에서 책 읽는 습관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는 대학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 역할의 한가운데 대학 도서관이 있다. 이제 대학 도서관은 시험이나 취업준비를 위해 공부하는 공간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진원지가 되어야 한다.

책을 생산하는 출판사도 이 일에 함께 뛰어들어야 하리라. 또 다른 의미의 산학협동이 필요한 것이다. 대학 도서관이 순수한 눈망울로 책을 읽고 토론하는 동아리들로 들끓을 날을 꿈꿔본다.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 약력:한신대, 이화여대 대학원 및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졸업. ㈜사계절출판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