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서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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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사회가 어지럽다. 과도기적 현상이려니 하고 조용한 세상을 기다려 보았으나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쩌다가 이렇게 서로를 탓하기만 하고 자기자신은 돌아보지 않게 된 것일까. 이 혼란은 결국 사람들의 가슴과 머리로부터 비롯된 것일진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병들게 하는 보다 직접적인 물리적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
며칠 전 미국으로부터 들려온 한 토막의 뉴스다. 미국의 여섯살이하 어린이 가운데 여섯 명중 하나 꼴은 만성납중독에 걸려있고, 일년에 4천명쯤의 신생아는 모체로부터 납에 중독된 상태로 태어난다고 한다. 납중독 증세는 빈혈·불면·무력감 등인데, 특히 염려되는 것은 어려서 납에 노출되는 경우 뇌와 신경계통에 결정적인 손상을 입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진아의 혈증 납 함량은 정상치보다 상당히 높게 나타난다. 보통 아이들도 납의 혈중농도에 비례하여 끈기나 이해력이 부족하고 성급하고 거칠게 행동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런데 만성 납중독의 아이들은 나중에 어른이 됐을 때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 91년 미국으로부터 들려오는 암담한 소식이다. 이는 선진국연구에서 이미 70년대부터 만성적인 납중독이 사람들의 폭력성향과 관계가 있다고 발표했던 것과 부합되는 결론으로 감옥에 수감된 사람들에게서는 보통 사람에 비해 납의 혈중농도가 한결같이 높게 나오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 심각한 양상이다. 서울시민의 모발에 함유된 납의 오염치가 미국인의 것보다 11배나 높다는 조사결과도 있었다. 도시인들은 시골사람보다 3배 가량 더 높은 값을 보였다. 더욱이 납의 오염상태는 산모보다 태아에게서 더 큰 것으로 보고되었다.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납의 사용량은 세계적으로 약3백만t을 넘으며, 그중 절반에 해당하는 양은 다시 환경 안으로 버려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범으로는 자동차의 노킹 억제제 이외에도 낡은 건물 벽에서 흩날리는 페인트·먼지 등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명자<숙대·이과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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