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모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과열경기 이렇게 풀자/업계입장: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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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총수요 억제로 물가잡아야/건설투자 줄이되 설비투자는 확충필요
올해 우리나라가 10%까지 과속성장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각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건실한 성장으로 가다듬기위해서 어떤 경기대책을 세워나가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전문가의 견해를 2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주>
우리경제는 지금 경기과열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성장률은 잠재성장률(8∼8.5%)을 초과하는 9%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소비자물가도 두자리수의 상승률을 나타낼 조짐이다. 한편 성장내용에 있어서도 매우 부실하고 불안하다. 소비와 건설이 성장을 주도해왔고 제조업과 수출이 성장주도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장내용,그리고 두자리수 물가상승이 그대로 계속된다면 우리경제는 경제의 선진화는 커녕 영원히 저성장­인플레의 남미형경제로 추락하고말 것이다. 물가를 안정시키고 경제체질을 강화하는데 정부·기업 그리고 근로자가 온힘을 기울일 때다.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총수요억제가 요체다. 총수요는 소비(정부·민간),투자(설비투자·건설투자),수출로 구성되어 있는데 억제되어야 할 것은 소비와 건설이지 설비투자와 수출은 오히려 촉진되어야 한다. 설비투자와 수출의 증대는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키우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는 아직까지 개발도상국이다. 선진경제 운운하는 것은 정치적 표현일 뿐이다.
거시경제정책운용에 있어서도 총수요관리에 의한 물가안정과 설비투자확충에 의한 성장잠재력의 배양이라는 두가지 과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따라서 총수요관리에 있어서도 선진경제에서처럼 무차별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선별적으로 해야 한다.
사실 최근 물가상승을 주도한 장본인의 하나는 정부다. 국민경제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재정규모가 지난 2년간 경상 GNP성장률과 총통화증가율을 초과하는 속도로 확대돼 왔다. 최근의 인플레는 재정에 의해서 유발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하나의 인플레유발요인은 임금상승이다. 지난 3년간 임금상승률은 노동생산성증가율과 경상 GNP성장률을 상회함으로써 생산코스트상승과 소비과열을 뒷받침한 것이 사실이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정부와 소비자의 절제력상실이 과소비와 건설과열을 일으키고 이것이 오늘의 물가불안을 가져온 장본인이다.
물가를 잡으려면 정부가 솔선하여 자신의 팽창욕구와 소비욕구를 잡아야 한다. 재정규모 증가율을 한자리수로 묶어놓고 민간에게 임금과 물가의 한자리수 안정을 호소해야만 설득력이 있다. 5공정부는 물가안정을 위하여 재정규모를 동결시킨 일도 있었다.
다가올 연속된 선거를 앞두고 갖가지 정치성 재정지출의 수요가 늘어날 것에 대비하여 정부의 확고한 절제력과 안정화정책 의지가 요구된다.
총수요관리를 위한 안정화정책으로서 정부가 으레 들고나오는 것이 통화긴축이다. 이번에도 총통화증가율을 17%수준으로 억제하겠다는 방침이다. 이것은 크게 잘못된 정책발상이다.
통화긴축은 소비와 건설의 과열을 진정시키는데는 실효성이 거의 없고 기업의 설비투자만 위축시킬 것이다. 지금도 금융경색으로 기업은 25%수준의 실효금리를 부담하고 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더 높이 올라가기를 정책당국은 바라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두자리수의 임금상승과 25%이상의 금리부담으로 우리산업이 경쟁력과 성장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행히 최근 수출회복의 기미가 보이고 이에 따라 기업의 투자마인드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이때에 맞추어 오히려 금융완화를 통하여 자금공급을 원활히 하고 금리를 안정시키면서 풀린 돈이 부동산투기나 소비로 연결되지 않도록 하는 정책운용의 지혜가 요구된다. 참된 경제안정은 물가안정뿐만 아니라 임금·금리·토지가격등 모든 생산요소비용의 안정이다. 이러한 안정만이 지속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안정은 정부·기업·근로자 모두의 욕구자제를 필요로 한다. 기업도 정부못지않게 규모의 확대보다는 경쟁력제고에 힘쓸 때다.
사회의 가치체계도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사회는 어느새 소비를 조장하는 선진국병에 걸려 있다. 소비보다 저축을 미덕으로 삼는 풍토로 되돌아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도자 계층의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 이러한 사회전체의 총체적 합의와 노력이 있어야만 진정한 경제안정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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