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 … 차기정부 초기에 바꾸면 더 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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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년 운용의 결과 드러난 문제로 인해 현행 헌법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민주정부들의 무능과 실정은 이를 더욱 확인시켜 주고 있다. 제도와 헌법 자체가 능력 있는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제도는 리더십 및 사회적 조건과 만나면서 변용된다. 즉 운용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헌법과 제도도 불변의 정전(正典)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가 발견될 때 적절한 개혁을 단행해야 할 필요성은 삶과 사회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의 헌법도 예외가 아니다.

더구나 민생과 경제 때문에 헌법 논의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현행 헌법체제로 치르고 있는 비용과 헌법 개혁으로 치를 비용을 비교할 때 전자는 후자보다 훨씬 더 크다. 스위스는 1965년 이후 지속적인 개헌 논의를, 독일은 전후 수십 번(51번)을 개헌하면서도 개혁과 선진발전을 지속해왔다. 헌법 논의가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방치를 초래한다는 가정은 오류인 것이다. 아니 오히려 사회경제적 개혁을 위해 헌법 개혁은 필요하다. 제도.헌법 만능주의도 문제지만, 헌법과 제도로 인해 큰 비용을 치르고 있음에도 교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여성, 국민, 인권, 평화, 경제, 영토 조항을 포함한 우리 헌법체계의 선진적 개혁을 주장해온 필자로서는 현 제안은 매우 부족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헌법 개혁 사안들과 권력구조 문제가 연결될 경우 선진헌법 개혁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기에, 후자를 위해 퇴임하는 정부의 역할은 자못 중요하다. 이론적으로 볼 때 권력구조 변경은 당해 헌법이 보장하는 권력행사가 예정되어 있지 않은, 퇴임하는 대통령과 정부에서 결말을 지을 때 더 중립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다. 권력구조 개편 이후에는 필요할 때 부분적 개헌을 시도하는 상시 개헌구조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대통령 후보들이 개헌 공약을 제시한 이후 차기정부 초기에 개헌하자는 주장은 현실적.헌법적으로 중대한 문제를 갖는다. 신임 정부는 초반부터 개헌 논란으로 다른 개혁을 못할 수도 있다. 또한 초기 개헌의 경우 대통령은 어떤 헌법의 적용을 받는가? 구헌법인가 신헌법인가? 현행 헌법의 제128조 2항은 이렇다.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 임기 초에 개헌을 할 경우 이 조항으로 인해 신헌법을 적용받을 수 없는 그는 폐지된 헌법에 근거해 임기를 보장받는가, 아니면 당해 대통령만을 위한 또 다른 경과 규정을 두어야 하는가? 깊은 헌법적 사려가 필요한 부분이다.

헌법 개혁처럼 중대한 국가의제에서 정략이 아닌 진정성의 대결을 목도하고 싶다. 대통령은 자신의 호소가 정권창출과 관계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탈당과 중립내각의 구성을, 그리고 한나라당은 유능한 민주정부 건설을 위해 개헌 논의를 수용하는 두 진정성의 만남을 보고 싶다. 이를 위해 시민단체와 학계를 포함해 우리 사회의 성숙한 민주적 덕성과 능력에 다시 기대를 걸어본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