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경조사(정치와 돈:5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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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접수축의금 몫돈 되는수도/강남 고급결혼식선 「억대설」까지(주간연재)
최근 신민당 신순범 의원이 장남의 결혼식 축의금을 몽땅 털어 자신의 지역구 낙도학생들을 돕기위한 장학재단 설립을 추진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정가는 물론 일반국민들 사이에 한때 화제가 됐었다.
물론 이 사실이 장안의 화제가 된것은 축의금으로 장학회를 만든다는 「선행」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통상 「극비」에 부쳐지기 일쑤인 축의금 규모가 정확히 공개되고 그 액수가 8천여만원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더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 같다.
지난달 13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치러진 결혼식은 국회 경과위원장이란 그의 신분에 걸맞게 2천7백여명의 하객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소문이다.
이날 접수대에 쌓인 봉투는 가방으로 4개분량 정도. 비서진들은 부라부랴 봉투가방을 모두 승용차에 싣고 비상라이트를 켠채 의원회관으로 달려가 1시간여동안 봉투를 정리해야 했다. 그러나 봉투 든 「알맹이」의 양은 봉투부피만큼 기대에는 못미치는 8천1백만원에 불과(?)했다는 소문이다.
2천7백여명이 낸 축의금이 이 정도에 불과한 것은 신의원이 상임위원장자리에 앉아 있지만 정작 이날 하객으로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와 평소 교분을 쌓거나 신세를 졌던 지역주민·동네사람 등 「서민」들이어서 1만원짜리 봉투가 많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라는 한 측근의 분석이다.
아무튼 신의원은 장남덕분에 자신의 평생 소원을 이룬셈이다.
정치인들이 치르는 경조사에 하객이나 조객들이 얼마나 오느냐,즉 얼마만큼의 부조금이 걷히냐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의 정치적 역량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장대구실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지난 1월 서울 삼성동 KOEX식장에서 있는 민자당 L모의원의 딸과 Y모 전의원의 아들 결혼식은 아직도 화제가 꼬리를 물고 있다.
이날 결혼식은 「품위와 수준」에서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다.
눈이 내렸던 이날 장안의 내노라하는 사람들이 얼굴을 보였고 여자하객들은 고급 여우털코트·밍크코트를 너도 나도 걸치고 나와 모피시장을 방불케 했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강남 고급결혼식」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날 「봉투」는 양가합동으로 접수됐는데 여기에는 1천여명의 하객이 몰려 20∼30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신의원에 비해 하객수는 훨씬 못미쳤으면서도 부조금 액수에서는 「억대」는 간단히 넘었을 것이라는 게 한 민자당 중진의원의 머리수 계산에서 나온 추정액이다.
그는 『의원들이 직접 「대사」를 치르는 현장은 일종의 고급사교클럽 분위기를 내는게 요즘세태』라며 『결혼식 현장은 의원들의 대외비자금 파이프라인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라고 말한다.
자금줄의 대상이 되는 인사들이 축하하며 봉투를 전달하고 의원들의 소속상임위 관련 관공서·기업체나 단체들이 성의를 표시하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의원들의 경조사는 재벌 비서실·홍보실의 정보파악의 최우선 순위.
의원들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거나 신문을 통해 정보를 입수,「등급」을 매겨 축하나 애도의 크기를 봉투에 담아 전달한다.
등급은 통상 ▲고위당직자,재무·상공·건설 등 소관상위 소속의원 등은 A급 ▲B급은 중하위당직자,비경제상위 ▲C급은 초선의원,앞으로 전도유망하고 투자가치 있는 의원들이다.
A급으로 취급받았다는 민자당의 한 의원은 『평소 후원해주는 기업들로부터 부담없이 「인사」를 받을 수 있는게 경조사』라고 털어놓는다.
이 때문에 국회상위나 인기순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고 의원들이 기를 쓰고 인기상위로 몰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 한 의원의 솔직한 고백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고위 공직자들의 호화 경조사가 심심찮게 화제가 돼 박대통령의 엄한 경고친서를 받기도 했는데 70년대초 장관자리에 있던 K모씨는 딸의 호화결혼식으로 물의를 빚어 결국 장관직에서 해임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최근 6공들어 민주화바람을 타고 슬그머니 정치인을 포함한 공직자들의 경조사가 다시 초호화·대형화돼 가고 있어 국민들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때문에 일부 의원들은 아예 구설수에 오르지 않기위해 미리 「화환·부조금사절」을 명백히 못박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돈이 풍족한 여당의원들은 다소 절제기미도 있으나 대부분의 여야 의원들이 한몫 보자는 심리가 없지않은 것도 현실이다.
이 때문에 경조사뒤에는 「누구는 수억원을 벌었다」는등 결코 달갑지않은 소문이 꼬리를 이어 그렇지 않아도 인기없는 국회의원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국회가 이번에 「근검절약하는 생활을 실천한다」는 윤리규범을 통과시키기로 했으나 얼마만큼 실천될지는 미지수다.<정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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