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 추로 땅 밑 물줄기 찾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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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수맥을 찾아 주는 유제영씨(62·국제 상사 판매 주식 회사 상무).
땅 밑 수십 길속을 흐르는 물을 찾아내는 그의 능력이 우선 놀랍지만 지난 30여 년을 거의 「무료로」수맥 찾기에 봉사해 온 그의 심성은 더욱 돋보인다.
『수맥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은 제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지요. 저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도록 주어진 능력입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기도 한 유씨는 수맥 찾기도 목회 활동을 통해 배우게 됐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유씨는 일제의 징용을 피해 잠시 중국에 피난 갔다가 귀국, 6·25전쟁 참전 후 군목 신부로 활동하던 중 이전부터 교분이 있던 프랑스인 보도뱅 신부를 만났다.
『58년쯤입니다. 충남 예산 성당의 보도뱅 신부님이 제가 사무장으로 근무하던 공주 성당에 오셨는데, Y자형 나무로 물을 찾아내더군요. 당시는 국내 식량 사정이 매우 나빠 미국 등지에서 밀가루 같은 것을 원조 받았는데, 밀가루 죽을 끓일 오염되지 않은 물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보도뱅 신부가 Y자형 생나무의 양끝을 쥐고 걷다 물줄기가 있는 곳에 멈추면 나무 끝이 휘는 것을 보고「너무 신기해서」유씨도 수차 례에 걸쳐 반 장난 삼아 수맥 찾기를 시작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여러번 해보니 대체로 수맥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수맥 찾기의 원리를 아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자력의 영향인 것도 같고, 약간의 신체적 특성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프랑스 신부의 어깨 너머로 조금씩 배운 수맥 찾기를 본격적으로 시도해 본 것은 지난72년 서울에 정착하면서부터다.
『독산동 성당에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독산동 같은 변두리는 수도물이 없었어요. 고지대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물이 없어 애 타는 모습을 보고 물을 찾아볼까 생각했지요.』
유씨는 고물상에서 구한 몽당연필 만한 쇠 추를 갖고 수맥 찾기를 시작했다.
『물이 있는 곳 근처에 가면 쇠 추가 수맥을 향해 진동합니다. 수맥에 한발한발 가까이 가면 진동은 더욱 세지지요. 수맥 바로 위에 서면 추가 회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특기할 점은 신체의 특징에 따라 추가 잘 움직이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제 경우는 매우 민감하게 움직입니다. 그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유씨 자신도 신기했지만 추로 찾은 장소를 파 보니 정말 물이 나왔다.
『수맥을 찾다 보니 느낀 것이지만 물은 높은데서 낮은 데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더군요. 때로는 거의 수직으로 오르기까지 합니다. 마치 우리 몸에 심장이 있어 머리끝 발끝까지 피를 뿜어대 듯 지구의 어딘가「불의 심장」이 있어 이리저리 물이 힘차게 흐르는 듯 합니다.지구전체가 생명을 가진 느낌이지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해 어딘가 목적지를 향해 물이 흐르고 있다는 감을 종종 받는다는 유씨는 최신 시추기기 보다 더 정확하게 수맥의 존재 여부를 알아내기도 했다.
『지난85년 북악 터널 근처의 한 호텔에서 수맥을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5천여평이나 되는 호텔 대지를 두어 시간 남짓 헤맸는데 수맥이 전혀 없더군요.
호텔 담당자에게 이런 말을 하자 화를 벌컥 내요.「여기가 계곡인데 그럴 리가 있느냐」고요.』
이 호텔 측은 그 후 최신 일제 시추 장비까지 들여와 십여 군데 구멍을 뚫어 봤지만 지금까지도 물길을 못 찾았다.
물은 갖고 싶다는 단순한 욕심만으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때로 과욕은 그야말로 「금물」일수도 있다고 유씨는 말한다.『서울 강서구 등촌동 K컬러 현상소 옆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현상소 옆 목욕탕 주인한테 수맥을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지요. 80여m쯤 지하에 비교적 수량이 풍부한 수맥이 있었어요. 파보니 물이 잘 나왔지요. 그런데 이 목욕탕 주인이 더 파래요. 물을 많이 쓰는 인근 현상소에서 판 지하수가 1백m쯤 되는 곳에 있으니 80m의 지하수가 옆으로 흘러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결국 고집으로 1백20m 가량을 팠는데 물이 전부 없어지고 말았지요. 다른 곳으로 샌 것이지요.』
여름 가뭄으로 목마른 농토를 해갈시키거나 주택지 용수 등을 위해 유씨가 수맥을 찾아 준 일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반대로 수맥이 없음을 확인하고도 대접받은 적도 많다.
『상수도가 닿지 않는 곳에 별장 등 집을 지어 파는 주택 업자들이 용수를 위해 수맥을 찾아 달라는 경우도 많습니다. 수맥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 주택 업자들은 집이 안 팔릴까 두려워「융숭한」대접을 해주지요.』
유씨가 지금까지 수천 건의 수맥을 찾은 것은 단지 물만을 얻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의학적 근거는 없습니다만 경험적으로 수맥 위에서 자거나 생활하는 사람들은 유난히 병이 많더군요. 물을 찾기 위해 서울 근교의 어떤 집을 가 봤는데 수맥이 셋방 밑으로 흘러가더군요.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셋방 사는 사람 중 혹시 아픈 사람 없느냐고 물어 보니 그런 사람 없대요. 그런데 이 소리를 들었는지 셋방 아주머니가 뛰어나와 이사 온 지도 얼마 안 되는데 운전기사인 남편이 전과 달리 몸이 불편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방에 들어가 남편이 이 자리에 자지 않느냐고 방바닥을 가리 키니 어찌 그리 잘 아느냐는 거예요.』
유씨는 수맥 때문에 몸이 아픈 사람들을 부지기수로 봐 왔다며 어떤3층집의 경우는 1층에서 3층까지 똑같이 아픈 증상을 보였다고 했다.
이런 집에 살 때는 장롱 등을 수맥 위로 옮기고 수맥을 피해 생활하거나 이것도 불가능할 때는 절연체인 얇은 동판을 깔고 자면 좋아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수맥 찾기 본고장인 프랑스의 경우 보통 물은 물론 온천까지 찾을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
유씨도 생전에 온천 한곳 정도를 찾아 천주교의 각종 봉사 활동 자금에 쓸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바라고 있다.
이렇게 수맥을 많이 찾았지만 사례로 교통비 정도만 받기 때문에 생활은 검소하다.
부인 이순희씨(54)와 직장을 가진 3남2녀를 거느리고 있는 유씨는 말년에 불우한 노인과 한적한 시골에서 서로 도와 가며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이 또 하나의 소망이라고 말했다.
글 김창엽 기자 사진 오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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