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관계공포증 유교권 국가사람에 많다-신경정신과학회 심포지엄서 이시형 박사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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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대인관계에서 일종의 노이로제인 대인관계공포증이 사회·문화적 요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발표가 나와 관심을 끌고있다.
3일 이리 원광대에서 열리는 신경정신과학회춘계 심포지엄에서 「대인공포와 한국문화」를 주제로 강연하게될 이시형박사(고려병원 신경정신과장)는 ▲예의와 체면·염치 등을 중시하며 ▲개인보다는 집단의 동질의식강조 ▲상대방에 대한 과잉배려와 이로 인한 민감한 눈치발달 등의 특성이 보이는 유교권문화, 특히 한국에서 대인관계공포증을 겪는 사람이 많다고 밝혔다.
대인관계공포증이란 다른 사람을 쳐다보기만 해도 눈이 시리고 안면경련이 일어나며 손이 떨려 학교·직장생활 등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어려운 일종의 정신질환. 이 질환을 겪는 이들은 사람 만나기를 꺼릴 뿐 아니라 본인에게 결함이 있어(예컨대 냄새가 나거나 얼굴이 못생겨) 남들이 나를 경멸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는 피해망상증까지 갖고 있다.
지난 85년 서울대조사 결과는 인구 1천명 당 5명 정도가 대인관계공포증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87년 이 박사가 1천2백명의 중·고·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더 높은 비율을 보여 1천명당 16명(1.6%)이 병적인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52.8%는 병적인 정도는 아니나 가벼운 대인공포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9년간 7백60여명의 대인관계공포증 환자를 치료해온 이 박사는 『영국이나 미국 등 서구의 경우는 사회공포(Social phobia)라 해서 사람 사귀기를 불안해하는 증상은 있으나 우리같이 죄책감을 느끼고 피해망상까지 가는 경우는 보고된 게 별로 없다』며 유교문화권이라는 특정문화권 안에서 나타나는 문화 결합증후군(Culture bound syndrome)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대인관계공포증은 개인의사를 표현하기보다는 절제하고 감추며 집단에 동조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되는 우리문화에서 잘 생겨날 수 있는 현상. 남을 의식하고 체면을 앞세우며 따라서 잘못했을 경우 수치감을 느끼며 이는 창피하고 미안하다는 생각에서 나중에는 죄의식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대인관계공포증을 앓는 이들은 낯선 사람을 만날 경우 생길 수 있는 약간의 흥분이나 긴장을 「있어서는 안될 일」로 생각하는 경향을 갖고있다. 예컨대 처음 사람을 만나 얼굴이 붉어지면 부끄럽기 때문에 얼굴이 붉어지는 게 아니라 얼굴이 붉어져(적면) 창피하고 눈앞이 깜깜해지는 「의식의 전도」를 경험하게 된다.
이들은 가족과 같은 아주 친한 사이의 사람들과는 별문제가 없으나 이웃·친척·학교급우·직장동료 등 어중간하게 아는 사이의 사람들을 대하게되면 증상이 심해져 나중에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공포를 느끼는 증상으로 악화된다. 심할 경우는 직장을 그만두며 심지어는 자살을 기도하는 경우도 있다고 이 박사는 말한다.
대인관계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마음속의 생각을 숨기지 않고 밝히는 「광고요법」이 필요하다. 일부러 의젓한 척 속마음을 숨기고 혼자 부끄러워하며 죄책감을 느끼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이 박사는 충고한다. 증상이 심할 경우는 신경정신과에서 실시하는 집단치료법을 통해 치료받는 게 좋다.
집단치료는 1주일에 한번씩 8∼10주간 계속되는데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와의 차이 ▲불안의 원인 ▲보통사람이라면 각자의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등을 구체적으로 토론하고 참가자들이 서로 충고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들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감을 얻게되는 수가 많은데 보통 집단치료를 통해 정상인으로 사회에 복귀하게 된다.
현재 집단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고려병원과 한국가족상담치료연구소 등이다. <문경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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