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드름 소년이 “바둑황제”/「왕위」타이틀 손에 넣은 16세 이창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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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무심히 대마낚는 “강태공 스타일”/조훈현스승 만나 새벽2시까지 연구/자장면 잘먹고 전자오락·만화도 즐겨
왕위타이틀을 차지,한국 바둑의 1인자가 된 이창호4단은 아직은 수줍고 말없는 소년이었다. 그러나 격전의 바둑판을 내려다보는 표정과 묵직한 자세는 왕자의 풍모를 풍겼다.
밤늦게까지 관전한 한국기원소속 기사들이 한국바둑의 새 시대를 연 이4단을 축하하는 가운데 소년은 더듬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승인은.
『선생님(조9단)이 어떻게 이런 큰 실착을 하셨는지 알 수 없어요.』(조9단은 좌변 흑대마가 살 수 있다고 보고 흑101의 패착을 했고 이 때문에 중반에 흑대마가 전멸했다)
­대국에 임할때 마음은.
『큰 승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저 배운다는 마음뿐이었어요. 이긴다 하더라도 그것은 담담한 마음에서 비롯되니까요.』(본지 해설위원 김수영 6단은 이4단의 기풍을 「강태공의 바둑」이라 표현했다. 이 4단은 무심히 낚시를 드리우고 조급해진 고기가 절로 찾아올때 거둬들인다는 것이다)
­자신의 기풍은.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실리위주지요.(이4단은 대학입시를 앞둔 고교생이 공부하듯 새벽2시까지 기보를 놓지 않는다고 옆에 있는 상기한 표정의 아버지 이재룡씨가 크게 말했지만 소년왕위는 그래도 무표정이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발빠르게 반상을 운영한다면 저는 두텁게 둬갑니다. 이것이 중반이후의 싸움에 밑거름이 되기도 하고 끝내기에서 유리한 저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해요.』
­바둑공부는.
『국내외 각종 기보를 놓고 연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한가지 스타일에 빠지지 않도록 이따금 변화를 찾습니다.』
이4단은 83년 한국바둑계에 혜성과 같이 나타나 지난해 41연승을 거두는등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신기록들을 양산해 국내외 바둑계에서 「소년도인」「사상 최강의 10대」란 별명으로 불린다. 최근 들어서는 『타이틀을 따는 것보다 지는 것이 뉴스가 된다』는 말까지 들을만큼 천재적 감각을 지닌 프로기사다.
이 4단이 바둑에 처음 입문한 것은 8세때인 83년. 10급기력인 할아버지의 어깨너머로 바둑을 배우기 시작,불과 1년반만에 아마 4단의 실력을 갖추게 됐다. 전주에서 금은방을 경영하는 아버지 이재룡씨(44)는 둘째아들 이창호소년의 소질을 묵혀둘 수 없어 84년 9월 아들을 국내 바둑의 최고수로 군림하던 조훈현9단 문하에 들여보냈다.
이4단은 그때부터 조9단 집에 기거하며 바둑수업에 정진,2년후인 86년 11세의 나이로 입단에 성공함으로써 조9단에 이어 국내 두번째 최연소 입단기록을 세웠다. 조9단 집에서 바둑수업을 할때는 매일 새벽2시까지 잠자지 않고 공부에 열중해 놀라운 끈기와 노력의 정신으로 주위사람들의 혀를 차게 만들었다.
이런 근성이 실제 반상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80년대 후반부터 난공불락으로만 여겨졌던 스승 조9단의 아성에 도전장을 던지기 시작했으며 90년 2월에는 마침내 제29기 최고위전 결승 5번기에서 조9단을 물리치고 출람의 화려한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조9단의 제자로 입문한지 5년,프로입단 4년만의 쾌거였다.
평소 말이 없고 표정도 지을줄 몰라 「반상의 두꺼비」로 불리는 이4단은 체력은 물론 정신력·승부기질·창의성 등 프로기사로서의 요건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스승 조9단이 날렵하고 빠른 행마를 특징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이4단의 기풍은 침착성과 끈기로 대변된다.
특히 89년은 이4단에게 한국기사에 길이 빛날 수많은 기록을 안겨준 한해였다. 이 해 그는 「최연소4단」「최다대국」「최다승」「최연소 타이틀획득」등 대기록을 수립했던 것.
이4단은 이어 최고위·대왕·국수를 차례로 차지하고 왕위도 되었다.
바둑세계에서와는 달리 아직은 10대의 어린 나이를 숨길 수 없어 이4단은 자장면·비빔밥을 제일 좋아하고 틈만나면 전자오락이나 만화 읽기에 빠져들기도 한다.<이헌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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