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터뷰] 권오규 신행정수도 기획단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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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과 정치의 주무대를 서울에서 '충청권'으로 옮기는 신행정수도 건설 작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운동 막판 공약으로 내놓은 후 청와대에 신행정수도 건설추진기획단이 발족된 데 이어 지난 6일 밑그림을 내놓는 등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과연 이 작업이 국가 백년대계를 내다보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충청 표'를 의식한 정치적 포석인가. 신행정수도 건설추진 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권오규 청와대 정책수석비서관을 만나 정부의 복안과 문제점 등을 짚어봤다.

-신행정수도 구상 발표 내용을 보니 입지 선정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어느 단계인가요.

"아직 멀었습니다. 현재 2단계로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한 팀은 입지 선정과 평가기준 등을 맡고 있고, 또 다른 팀은 현장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내년 2월께 종합평가가 나올 것이고 추가조사를 거치는 등 일러야 내년 6월 정도에 2개 시안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기초로 공청회를 하는 등 최종 발표는 내년 하반기에나 가능합니다. 이번 발표는 1개 팀의 중간보고라 앞으로 내용이 달라질 겁니다."

-인구 50만명을 수용할 2천3백만평 규모로 만들겠다는 것은 어떤 기준에서 나온 것입니까.

"신행정수도가 자족성 그리고 정치.행정과 교육.문화기능을 고루 갖추려면 그 정도 인구는 있어야 한다는 분석입니다. 땅은 주민이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ha당 3백명을 기준으로 하고, 여기다 5백만평 정도의 녹지를 추가해 2천3백만평을 계산한 것입니다."

-신행정수도는 정부의 확정된 정책인가요, 아니면 구상단계인가요.

"당연히 정부 방침으로 결론이 난 것이죠."

-이 정도의 국가사업은 임기 5년의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일이 아닙니다. 많은 돈을 쏟아부은 뒤 다음 정권에서 없던 일로 결정이 나면 엄청난 국가적 낭비입니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국민적 합의를 모으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 아닌가요.

"盧대통령이 이를 대선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됐기 때문에 이미 국민으로부터 수임받은 사안으로 봅니다. 때문에 별도의 국민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수도 이전은 대선 공약 중 하나였지, 이를 보고 국민이 盧대통령을 뽑은 것은 아닙니다. 정부가 무작정 밀어붙이는 것은 절차상 심각한 하자가 있다고 보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선 승리가 국민 동의라고 봅니다. 또 국회에 신행정수도건설 특별조치법이 올라가 있는데,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이 법이 통과되면 국민 동의를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치권은 내년 총선의 표와 연계해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대형 국가 사업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지금은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따른 것이지 결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각종 여론 조사를 보면 이전에 찬성하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만약 특별조치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행정수도 이전은 안되는 건가요.

"설사 통과가 안돼도 행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한계는 있을 겁니다. 입지 선정을 비롯해 재원 마련 특별회계, 부동산투기 억제 조항 등 핵심 사안과 절차적 요인이 모두 법에 들어 있어 만의 하나 통과가 안 되면 차질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통과될 것으로 믿고 있으며, 반드시 통과되도록 정치권을 설득하는 등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한나라당 등은 내년 4월 총선 이전에 부지를 결정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가능한가요.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내년 하반기 부지 선정 후 3년도 채 안되는 2007년 기공식을 하겠다는 게 정부 계획입니다. 일본의 경우 십여년째 수도 이전을 논의하고 있는데 아직 결론이 안 났습니다. 서두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참여정부가 시작한 것이니 책임지고 기공까지는 하겠다는 겁니다. 입지 선정 후 국제적 공모를 거쳐 도시를 설계하고, 설계 이후 건설에 들어가려면 그때쯤이면 가능할 겁니다."

-참여정부에서 꼭 기공식을 해야겠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 치적을 노린 것 아닙니까.

"대선 때 확정된 것이므로 5년여가 걸리는 셈입니다. 그리 급하게 가는 것도 아닙니다."

-행정부뿐 아니라 국회와 사법부까지 옮기고, 교육.문화 자족기능까지 갖추겠다는 복안이라면 단순한 신행정수도가 아니라 사실상의 천도(遷都)아닌가요.

"아닙니다. 행정과 정치기능만 옮기지 금융.산업.문화의 주축은 수도권에 있습니다. 수도의 상징적 의미를 고려해 3부가 같이 가는 게 옳다 싶지만 국회와 사법부 이전은 국회 승인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왜 굳이 행정수도를 옮기려고 합니까.

"현재 수도권의 기능이 한계점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같은 수도권 1극 체제로는 국가 장기발전의 동력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교통.환경.주택 과밀 상황에서는 수도권은 물론 국가 경쟁력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또 전국이 고르게 사는 국토의 균형발전 없이는 소득 2만달러시대로 갈 수 없습니다. 신행정수도는 가장 선도적이고, 가장 핵심적인 사안으로 보면 될 겁니다."

-뉴욕 등 선진 대도시들도 과밀문제가 있지만 신도시보다 기존 도심을 재개발하는 추세입니다. 왜 우리만 새 행정수도를 만들려고 하나요.

"사정이 다릅니다. 우리 수도권은 10년 단위로 인구가 4백40만명씩 유입됩니다. 이를 막아야 하는데 지금의 수도권으로는 어렵습니다. 정치와 행정기능을 뽑아내면 공무원 등 65만명 정도가 충청권으로 이전하고, 산하기관 등의 1백70만명 정도가 빠져나가면 과밀로 인한 비효율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는 서울 등의 부동산가격 안정 등에 도움이 됩니다. 또 현재 수도권은 규제가 족쇄처럼 묶여 있어 발전에 한계가 있습니다. 행정수도가 옮겨지면 이런 제한도 풀릴 것입니다. 국회에 제출한 지역균형발전과 지방 분권, 행정수도 이전에 관련된 3개 법안이 제대로 되면 국가의 발전 동력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어 수도권과 전국은 윈-윈이 될 겁니다."

-전에도 행정수도 이전의 일환으로 청(廳)들을 대전으로 옮겼지만 교육 등의 문제로 사실상 반쪽이 됐습니다.

"조달청장 시절 대전에 가 있어서 잘 압니다. 신행정수도는 서울이나 분당 등보다 훨씬 쾌적한 도시가 되는데다 교육과 문화기능이 함께 가므로 성공할 것입니다."

-통일에도 대비해야 할텐데 행정수도를 남쪽으로 옮겨도 괜찮나요.

"통일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고, 설사 된다 해도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상당한 적응기간이 필요할 겁니다. 문제가 없습니다."

-지역균형발전을 강조하는데 신행정수도가 충청권으로 가면 서울과 충청 연결축만 개발되고 나머지는 더욱 소외될 수 있습니다. 45조여원을 전국에 바로 투자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각 지역이 나름대로의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게 지역균형발전과 지방 분권, 신행정수도의 목적입니다. 이 계획이 시행되면 모든 지역이 스스로 발전 동력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신행정수도가 전국 어디서나 두시간 이내 거리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낙후지역까지 동반 발전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서울에서 행정수도 기능을 빼버리는 것은 영종도를 동북아중심으로 만들겠다는 구상과 상충되지 않습니까. 민원인들도 많이 불편할텐데….

"수도권 인구 2천5백만명 중 공무원 65만명과 관련 인력이 빠져나간다고 서울의 기능이 위축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영종도에 모든 업무를 지원할 행정기관이 있을 것이고, 영종도와 서울에서 신수도로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민원 불편은 없을 겁니다."

-외국의 행정수도 이전은 대부분 실패작으로 평가받는다는 점을 아시죠.

"물론입니다. 우리는 이를 교훈삼아 그런 실패를 하지 않을 겁니다."

-충청권에 부동산투기가 심합니다.

"여러 곳을 투기지역으로 지정했습니다. 토지는 지난 1월 기준으로 수용할 것이고 개발이익은 대부분 환수할 것이므로 별 이득을 못 볼 겁니다. 추가 조치도 나올 겁니다."

만난 사람 = 김왕기 논설위원.신혜경 전문기자
정리=정재홍 기자, 사진= 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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