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자의 날 맞은「비운의 체조스타」박소영|어머니마저 집 나가 외로운 나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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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비운의 체조스타 박소영(16·서울 노원구 상계동 주공아파트)은 봄이 오고 장애인의 날을 맞은 20일 아침에도 혼자 쓸쓸히 집을 지키고 있다.
잦았던 주위의 발길도 끊긴지 오래고 이제는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만이 계속될 뿐이다.
내일의 코마네치를 꿈꾸며 밤과 낮 구별 없이 흘린 땀방울은 얼마며 자신과 가정을 버리고 떠나간 어머니를 그리며 남몰래 흘린 눈물은 또한 얼마였던가.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방에 걸어 놓은 유니폼만이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박소영이 불행의 나락으로 나동그라진 젓은 한겨울 함박눈이 쏟아지던 지난 89년 12월26일.
뛰어난 기량과 타고난 자질로 체조 인들의 주목 속에 대표팀 상비군에 발탁된 당시 수유여중 2학년의 박소영은 크리스마스 연휴도 마다하고 학교 체육관에서 훈련 중 척추골절이라는 천형과도 같은 하반신마비의 중상을 당하고 말았다.
8개월 여의 입원치료와 계속된 통원 및 물리치료로 병세는 크게 호전, 휠체어에서나마 이동은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으나 요즘 들어서는 좌절감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졌다.
다행히 학교 및 서울시 교육위원회와 체조협회 등 주위의 도움으로 밀린 병원 비를 청산하고 전세나마 조그만 아파트로 이사를 하는 등 당장 생계에 큰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올 들어 새 봄을 맞으면서 앞날에 대한 불안이 더욱 엄습해 오고 회의적인 상념에 사로잡히기 일수다.
지난 89년2월 아버지 박일룡(박일룡·52·무직) 씨와의 불화로 집을 나간 어머니는 2년이 넘도록 연락조차 없다.
무엇보다도 소영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혼자 동생 찬희(노원중2)등 남매를 뒷바라지하느라 이마 주름의 골이 깊어진 아버지를 대할 때다.
아버지는 소영이가 부상하면서 생계 수단이던 리어카 행상마저 포기, 지금까지 딸의 곁에서 그림자처럼 간호하고 있다.
아버지는 하반신 신경 절단으로 대소변마저 가리지 못하는 딸을 이제껏 돌봐 온 것이다.
최근 소영이를 더욱 마음 아프게 한 것은 몇 군데 찾아간 주변의 교회마저 장애인에게는 무관심한 듯 모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도록 지어져 몇 차례나 되돌아오곤 했다는 것.
다행히 86아시안게임 직전 공교롭게도 비슷한 처지가 된 체조 선배 김소영(21)과 전화통화로 나마 서로 격려하며 아픔을 달래고 있다.
또한 뒤늦게나마 시작한 고입용 중학 강의록을 공부하며 선수시절 느껴 보지 못했던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예전에는 발견치 못했던 것들이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불쌍한 동생을 위해서도 그렇고 저를 외해 밤낮으로 수발하시는 아버님을 위해서도 그렇고…』.
이제 소영이의 꿈은 열심히 공부해서 불우한 후배 체조선수들을 돕는 것이다.
체조선수로는 실패한 소영이의 소박한 꿈은 어떻게 결실을 볼 것인가. <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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