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정부 상대로 손배소/제암리 유족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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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항일군중 교회감금 방화학살”/내달 공식사과 청구도
3·1독립운동 직후 일제의 잔혹한 한국인 탄압을 대표하는 「제암리(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학살사건」의 희생자 유족들이 72년만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및 공식사과(진사) 청구소송을 일본 동경지법에 낸다.
5월중순 일본으로 건너가 소송을 내기로한 이 소송의 원고는 당시 학살사건의 목격자이며 남편 안진순씨를 잃은 전동례 할머니(96·제암리 325)와 유족 안용웅씨(48)를 비롯한 희생자들의 손자와 증손자 등 여섯가족 7명이다.
전할머니등은 이 소송에서 ▲일본은 제암리 학살사건 희생자 23명을 기리는 비를 현장에 건립하고 ▲일제만행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사와 함께 양국 신문에 광고문을 게재하며 ▲희생자 유족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키로 했다.
원고들은 5월초까지 이 소송을 지원하는 일본내 「일본을 상대로 한 배상요구추진회」(회장 송두회)와 협의,손해배상 요구액을 결정할 계획이다.
원고들은 20일 공개한 소장에서 『일본 정부는 한국의 무고한 농민과 부녀자 등 23명을 방화·집단학살한데 대해 공식 사과하고 응분의 손해배상을 해야한다』고 밝혔다.
유족 안씨는 『제암리 학살사건은 일제 식민지 지배의 본질을 보여주는 만행』이라며 『희생자의 유족으로서 이 사건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듣고 자라왔으며,일본의 사과를 받지 않고는 영원히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제암리 학살사건=3·1독립운동 직후인 1919년 4월5일 제암리부근 발안주재소앞에 군중 1천여명이 모여 만세시위를 벌이자 일경은 곤봉으로 무차별 구타하며 해산시켰으나 시위는 매일 계속됐다.
이에 따라 일제는 4월15일 20사단 79연대 헌병 30여명을 제암리로 출동시켜 주민들에게 『경찰의 난폭한 행동을 사과하겠으니 14세이상 남자들은 교회로 모이라』고 속여 청년 24명을 초가집 교회에 모아놓고 감금한뒤 석유를 뿌린채 방화·총격을 가해 집단학살하고 부녀자 2명을 살해하는 등 모두 23명의 한국인을 희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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