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환자의 희망, 복돼지와 살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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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돼지는 인간에게 여러모로 고마운 동물이죠. 식용으로 사용되는 것도 그렇지만 심장병 환자들에게는 정말 소중한 동물입니다."

국내 심장병 연구와 치료 분야 권위자 가운데 한 명인 전남대병원 순환기내과 정명호(48.사진) 과장은 돼지와 특별한 인연을 10년 이상 이어가고 있다.

그는 5평 크기의 병원 별채 사육실에서 10여 마리 가량의 돼지를 키워왔다. 돼지의 심장이 여러 동물 가운데 사람의 심장 모양 및 혈전(혈관 안에서 피가 엉기어 굳은 것) 체계와 가장 유사해 병원에서 직접 돼지를 기르며 연구와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 교수는 10여년 동안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증 치료를 위해 돼지 심장 혈관에 스텐트(Stent)를 삽입하고 한두 달 뒤에 다시 꺼내 비교 관찰하는 실험을 해왔다. 스텐트는 혈관이 막힌 곳에 밀어 넣어 피가 원활하게 통하게 해 주는 금속망으로 가격이 개당 200만~300만원이나 된다.

돼지 한 마리를 상대로 2차례 수술을 하게 되는데 1996년 이후 지금까지 실험에 사용된 돼지는 840여 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처음 수술은 스텐트를 삽입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돼지 가슴을 절제해 스텐트를 제거한 뒤 심장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때 돼지는 죽게 된다.

그는 1600여 건의 수술 경과를 523편의 논문에 담아 국내외 학회지 등에 발표했다. '재협착 방지 약물을 바른 스텐트' 등 3건의 특허를 갖고 있으며, 5건은 특허를 출원해 놓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국.유럽 심장학회를 비롯한 세계 4대 심장 관련 학회로부터 탁월한 업적을 이룬 전문의에게 수여하는 정회원 자격증을 받은 것도 돼지의 덕이란다.

정 교수는 "돼지들의 희생을 디딤돌 삼아 국내 심장병 치료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다"면서 "도심 병원 안에서 돼지를 청결하게 기른다는 게 어려운데다 관리와 실험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국내에선 우리 병원에서만 돼지를 기르면서 실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0년 이상 돼지와 더불어 살면서 돼지의 매력에 빠져 돼지인형 수집이 취미가 됐다"고 했다.
그는 학회 참가나 여행 등을 위해 외국에 나갈 때마다 돼지를 소재로 한 인형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이같은 취미는 곧바로 소문이 났고, 주변의 지인들이 수시로 돼지인형을 선물했다.

이렇게 수집한 돼지 인형은 현재 1000여 개로, 그의 연구실 진열장에 가득차 있다.

새끼손가락 손톱 만한 것도 있고, 농구공보다 큰 것도 있다. 노래하는 인형, 커플 돼지 인형 등 모양과 기능도 다양하다. 집에는 돼지 그림이나 문양이 들어간 슬리퍼.베개.이불 등이 있다.

정 교수는 "스텐트는 고가품이어서 부가가치가 매우 크다"며 "돼지를 잘 활용해 심장병 환자들을 돕는 한편 국가경제 발전에도 일조하는 게 꿈"이라며 넉넉하게 웃었다.

글=이해석 기자, 사진=프리랜서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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