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의 「전후구도」 수정/미군 난민구호 파병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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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내정간섭” 이라크·유엔 반발/충돌할 가능성도 배제 못해
미국은 이라크의 영토안에 난민보호구역을 구축하기 위해 5천∼1만명의 병력을 투입키로 결정,17일부터 미군이 북부 이라크로 진입하고 있다.
피트 윌리엄스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 지상군 진입개시를 확인,앞으로 2주내 이라크 영토내에 쿠르드족을 위한 난민촌 6∼7개가 건설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 국방부 관리들은 영국과 프랑스도 각각 1천∼2천명의 병력을 같은 목적으로 파견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이 난민촌이 미·영·프랑스군에 의해 보호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과 동맹국들이 이처럼 한 주권국가안에 병력보호까지 곁들인 난민지역을 설치하는 행동은 당사국 이라크는 말할 것도 없고 유엔에서도 혼란과 우려와 숱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서방측 조치에 대해 아마드 후세인 알 호다이르 이라크 외무장관은 「내정간섭」이라고 항의했고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유엔 사무총장도 즉각 이같은 작전의 합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일단 말린 피츠워터 미 백악관 대변인은 『우리는 유엔결의 688조가 완전한 권한을 부여해준다고 믿는다』고 말했지만 잡음이 곧 진정될지 의문이다.
부시 미 행정부로서는 국제사회의 이의와 별개로 이번 파병은 전후 이라크 구상의 어쩔 수 없는 수정이며 조기철군계획의 지연으로 대내적 문제도 안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국내외 거센 여론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의도했던 전후 구도를 달성하기 위해 쿠르드족 난민문제를 의식적으로 외면해왔었다.
미국은 쿠르드족문제를 이라크 내부문제로 규정,이에 개입하기를 거부해왔다.
그러나 쿠르드족 난민의 참상이 연일 보도를 통해 알려지게 되고 그 책임의 일단이 미국에 있다는 여론을 끝까지 묵살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이 인도주의적 입장을 강조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미군파견으로 전후 영토를 포함,이라크의 통합을 보장하겠다던 미국의 목표가 멀어지는 위험을 안고 있다.
미국은 과격파 회교국인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이라크의 영토나 국력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반군세력을 진압하는 것을 눈감아왔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조치가 미국이 월남에 빠졌듯이 이라크라는 수렁에 결코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는 있으나 누구도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입장이다.
미국은 앞으로 수백만의 쿠르드족의 존립을 어떤 식이든 보장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점점 이라크 내부문제에 끌려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또 난민문제가 조기에 해결되지 않는한 미국은 앞으로 이들의 의식주를 책임지지 않을 수 없는 부담을 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처음부터 이 난민문제는 유엔등 국제기구가 맡아 줄 것을 희망해왔다.
그러나 앞으로 과연 유엔이 이 문제를 어떻게 떠맡게될지 미지수다. 미국은 미군을 이라크 북부로 보내면서 후세인이 결코 이들을 공격치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충돌이 빚어질 만일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될 경우 종전은 물건너간 것이 되며 이라크문제는 미국의 수렁이 될 가능성도 높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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