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TV 민간주도형제도 정착 필요|김우룡<외대 신방과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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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안이한 낙관론이 기술의 세계를 지배한다. 놀라운 기술들이 쏟아지는 시대에 살면서 그러한 것들을 채용만 한다면 우리들의 삶은 더욱 행복해지고 더 좋은 세상은 저절로 굴러 오는 게 아니냐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테크놀러지야말로 인류 역사의 원동력이자 궁극적 결정 요인이라고 보는 시각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고 기술혁신이 사회변화를 초래하며 특히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진보가 사회변화를 가져오는 큰 힘임을 지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일부 비판론자들이 지적하듯 기술 제일주의가 반드시「제국주의의 위장 논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손치더라도 선진국의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러지가 후진국에 이식됨으로써 후진국의 종속현상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국가간·지역간·개인간에 불평등구조를 한층 더 중증 화시키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하이테크는 하이 터치를 수반하지 않고서는 무의미하게 된다. 새로운 기술이 사회에 도입될 때 언제나 균형을 찾으려고 하는 인간적인 반응이 나타나게 되는데, 신기술에 대한 이러한 인간의 대응방식을 하이 터치라 이름한다. 그러나 기술과 마음의 균형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오늘날 첨단 기술은「제트기」속도로 개발되고 있는데 제도와 의식·가치·교육 등 정신적 세계는「거북이」걸음으로 발전되고 있기 때문에 이 둘 사이의 간격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술적 가능성과 그것의 실현을 혼동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요즘 한창 관심을 모으고 있는 유선TV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기술적으로 쌍방향 유선 텔레비전은 정보화 사회의 하부구조가 되는 신 매체다. 방송과 통신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종합 정보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듯 유선TV도 여러 가지 부정적 측면을 함께 지니고 있다. 더욱이「황금 알을 낳는 거위」라는 인식을 일반화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특수 케이스일 뿐이다.
그런 까닭에 뉴 미디어를 새롭게 도입할 때는 기술의 수준과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올바른 정책을 세워야 한다. 좋은 정책만이 나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과 수단을 모두 동원해 큰 일을 달성코자 하는 행동의 지침이 정책이다. 정책은 정부가「하기로」결정한 내용이거나 또는「하지 않기로」선택한 일로서 서로 타협해 도출해 낸 집합적 결정을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방송정책은 정권 적 차원의 필요성에서 즉흥적이자 가부장적으로 입안돼 왔다.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나 정보화 사회에 부응하기 위해 새로운 매체나 기술이 등장하지 못하고 남이 하니까 우리도 한다,
정치적 불안 해소 방안으로, 또는 국왕의 생일을 축하하거나 대 국민「선물」용으로서 뉴 미디어를 도입하는 예가 많았다. 혼란 된 상황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정책을 세우는 비합리적인 모델을 흔히「쓰레기통 모형」이라고 한다.
곧 입법화될 유선TV는 문호개방의 노선 위에서 억제보다는 촉 성의 차원에서, 그리고 공공부문보다는 민간부문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게끔 이성적이자 이상적인 제도를 정착시켜 나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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