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왕국 실체 밝혔다|양산·김해 유물 발굴의 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최근 경남지역 일대에서 잇따라 발굴되고 있는 가야시대관련 유물들은 그동안 베일 속에 있던 가야사의 실체를 복원해 줄 자료일 뿐 아니라 우리 문화의 기원 및 한일문화 교류의 근거 자료가 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발굴조사가 집중된 지역은 경남 양산 일대(동아대)·김해시 대성 동(경성대)일대로는 현상 6가야가 존재했었던 지역이다.
이들 지역 중 특히 양산지역은 일제가 황국사관 정립을 위해 발굴을 시작, 세계적으로 유명한 양산 부부 총과 함께 금동관 등 유물이 발굴됐었다.
그 뒤 일제 관 학자들이 이 지역에 대한 발굴을 계속 벌여 왔으나 그들이 주창하던 소위 「임나 일본 부세」의 입증은커녕 오히려 가야의 실체 및 우리문화의 일본 수출을 입증하는 유물발굴이 잇따라, 보고서 등 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채 이 지역 발굴·연구 등도 그쳤었다.
그러나 최근 이 일대의 대학들이 이 지역에 대한 발굴을 본격적으로 실시, 지난해 6월 동아대 팀이 양산 일대에서 금동관·토기·철기 및 귀금속류 4백여 점을 발굴했으며 경성대 팀이 지난해 6월부터 지금까지 김해 대성동 일대에서 파형 동기·칼·화살촉 등 1천여 점의 유물을 발굴했다.
이 지역은 1세기초에 세워져 532년 멸망한 가야의 문헌 속 위치와 일치하고 각종 유물도 제작시기까지 맞아떨어지며 특히 대성 동 유적은 국가형태를 갖춘 가야의전성기에 해당하는 4세기께의 것들로 고고학 및 역사학적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대성 동 유물 중 벽 옥 화살촉은 제작시기가 4세기쯤의 것으로 당시는 철기시대에 해당돼 왕족 등의 권위를 나타내 주는 상징물로 평가된다.
이는 특히 삼국지위지동이 부에서 나타나듯 활을 숭배하던 우리 민족이 국가 권위의 상징물로 옥 제작 화살촉을 무덤에까지 부장 하는 관습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일본 왕실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파형 동기도 이 지역에서 6점이나 나와 우리 문화의 일본 수출을 뒷받침하는 뚜렷한 사료로 평가되는 것이다.
특히 이 지역 유물 중 우리 문화의 기원과 관련, 주목되는 것은 청동 제 항아리 및 동물문양 등이다.
이는 스키타이 계통의 것들로 신석기 관련 유물이 시베리아 지역과, 적석총등이 중앙아시아의 알마아타 유적과 관련을 맺고 있는 사실 등과 관련 우리 문화 기원연구에 단서를 제공해 주는 유물로 보인다.
이번 발굴은 가야가 전성기인 4세기를 지나 6세기까지 어떤 형태로 쇠퇴했는가 등의 연구를 통해 복원해야 할 가야인데 충분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또 최근 일본의 사학자인 황전영성(36)이『신무천황의 본관』이라는 책을 통해『신무천황은 김수로왕의 후예다』는 주장을 펴는 등 일본 내에서도 우리 문화의 일본유입을 주장하는 경향을 반영, 우리 문화의 해외 전파 역시 이번 발굴을 계기로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학계의 지적도 있다.
이번 발굴과 관련, 서울대 고고학과 최몽룡 교수는『가야존재의 입증은 물론 장막에 가려진 가야관련 문현사의 보완, 우리 문화의 기원 및 전파연구 등 이 뒤따르는 등 문학사적 복원이 고고 학계 및 역사학계의 과제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