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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벼랑 끝에서 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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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솔개가 변신을 결심하면 저 멀리 벼랑으로 날아가 바위 뒤에 웅크리고 앉는답니다. 낡고 무뎌진 부리를 바위에 갈아 다듬어, 뾰족해진 부리로 오래된 축 처진 날개 깃털을 하나씩 뽑으며, 그 부리로 동그랗게 굽어 쓸모없어진 발톱을 생니 뽑듯 뽑는다지요. 100일이 흐르면 탄력 있는 깃털, 날카로운 발톱이 새로 자라납니다. 이렇게 변신에 성공한 솔개는 다시 비상(飛翔)합니다. 새 부리, 새 깃털, 새 발톱으로 30년을 더 산다는군요.

2007년입니다. 솔개나 한국이나 벼랑에 선 건 마찬가지입니다. 기신기신 살다 죽을 것인가, 비상할 것인가.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의 경이로운 성취를 이뤄 낸 한국은 여기서 멈출 것인가, 비상할 것인가.

2007년은 제17대 대통령을 뽑는 해입니다. 대통령을 잘 뽑아 벼랑 끝에서 날아야 하는 해입니다. 한국과 한국인은 지금 어떤 벼랑에 와 있습니까.

첫째, 외교의 벼랑입니다. 한국은 세계와 아시아 외교무대에서 고립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둘째, 안보의 벼랑입니다. 핵무기에 노출돼 있는데 '우리는 공격받지 않을 것'이라는 기묘한 안전의식이 퍼져 있습니다. 셋째, 장기 불황의 벼랑에 섰습니다. 경제의 피가 굳어 빈혈 환자처럼 비틀거리고 있어요. 넷째, 일자리의 벼랑에 섰습니다. 일자리는 인권입니다. 다섯째, '법과 질서'의 벼랑에 섰습니다. 범죄자는 치안 능력을 비웃고, 시위대는 공권력을 조롱합니다. 여섯째, 생활 속 권위가 벼랑 끝에 섰습니다. 일상에서 경어가 사라지고 거친 막말이 인간관계를 황폐화하고 있지요. 일곱째, 가정도 벼랑에 와 있습니다. 출생률 저하, 기러기 가족, 이혼, 독거 노인, 소년소녀 가장이 양산되고 있어요. 한국 사회를 지탱해 온 가족제도가 빈 둥지로 바뀌고 있습니다.

2007년, 한국과 한국인을 재건할 시대정신은 '성장+통합+소통'입니다. 인체로 치면 성장은 뼈, 통합은 살, 소통은 신경망에 해당합니다. 성장의 뼈와 통합의 살과 소통의 신경망을 날개 삼아 벼랑에서 날아야 합니다.

한국은 1995년 이래 12년간 소득 1만 달러 시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일본이 1만에서 2만 달러 시대로 진입하는 데 6년이 걸렸습니다. 싱가포르는 5년, 미국은 10년이 걸렸어요. 소득 정체 12년의 시대, 한국의 성장은 여기서 멈추는 건가요.

그럴 순 없지요. 성장의 돌파구, 성장의 신형 엔진을 찾아야 합니다. 생존하고 성장하고 비상해야 합니다. '12년 정체'는 국민 간 이질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시기이기도 했어요. 통합이 급속도로 파괴되는 시절이었죠. 시민의 공공적 가치관은 엷어지고, 개인과 파당의 사적 욕망이 지배하는 사회로 질주하고 있습니다. 버스와 지하철의 공공성은 쉴새없이 울리는 휴대전화 컬러링과 전화 목소리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공적인 공간이 안방화되고 있는 거죠. 공공성의 파괴는 마치 마구잡이 벌목으로 벗겨진 민둥산과 같습니다. 해마다 홍수 피해가 공공이 치러야 하는 비용으로 청구될 것입니다.

공공의 안보, 공공의 치안, 공공의 복지, 공공의 언어, 공공의 관용, 공공의 배려를 세우는 비용은 어디서 구해야 할까요. 국민 간 이질성을 치료하고, 국민통합을 회복하는 데서 비용이 나옵니다. 통합이 신뢰를 낳고, 신뢰는 곧 자본이기 때문입니다. 2007년 한국의 비상, 한국인의 변신을 선언합시다. 솔개처럼 벼랑 끝에 나아가 비상합시다.

비상의 목표는 성장과 통합과 소통입니다. 비상의 방법은 인내와 용서와 대화입니다. 인내로 성장을 일으킵시다. 용서로 통합을 이뤄 냅시다. 대화로 소통을 회복합시다.

전영기 정치부문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