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승 대표 설 자리 다져 주자"|김 부장이 정치민원 해결사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17면에서 계속>
신씨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야당인사의 경호 실 출입은 청와대 등 여귄 내에서조차 눈총을 받았던 양이다. 청와대 참모였던 Q씨는『야당의 누구누구가 차 실장 방을 드나든다는 것을 청와대 내에서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고「차 실장 솜씨가 보통이 아니 야」라는 말도 돌았다』고 귀뜀 했다.
차 실장의 농축된 대야관계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모습을 드러내 놓곤 했다.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79년 5·30 신민당 전당대회 공작에서도 그 흔적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되고 있다. 김재규 부장의 정보부 팀을 내세워 김영삼 후보를 사퇴시키려 한 강공책이 먹혀들지 않자 차 실장은 이철승 대표에게 표를 몰아주기 위해 차선책으로「만만한」신도환 최고위원을 물러서게 하려 했다는 주장도 있다.

<신 후보 사퇴종용>
신씨의 증언.
『내 표는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1차 투표에서 비록 87표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대회 전에 나는 적어도 1백60∼1백70표 정도는 될 것으로 계산했었어요. 내가 이철승씨를 밀기로 정보부와 약속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그건 터무니없는 얘기 에요. 나라고 야심이 없었겠습니까. 나도 한번 당권에 도전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내가 독자노선을 고집하자 우선 정보부에서 달려들더군요. 전당 대회 한달 전쯤인가 김재규 부장 밑에서 정치관계를 담당하는 K씨와 L씨가 만나자고 해요. 지금의 일본 대사관 옆에 대구 집이라는 한식집이 있었는데 거기서 저녁을 같이 했죠. 두 사람 다 대구 출신이라 평소에 고향 선배인 나를「신 선생님」이라고 불렀죠.
처음엔 부드럽게 나오더군요.「신 선생님, 이번엔 나오지 마십시오. 우리들 방침은 이번엔 이철승씨를 시키는 겁니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도대체 그게 말이 되는 얘기냐. 야당이 전당대회해서 표 많이 나오는 사람이 야당 총재를 하는 거지, 정보부 마음대로 이 사람은 안되고 저 사람을 시키겠다는 거냐」고요. 내가 펄쩍 뛰자 그날은 그냥 가더군요.
그렇게 두 세 차례 만났는데 나중엔 「신 선생님이 정 고집을 부리시면 창피 당하는 일이 있을 겁니다」라고 은근히 위협까지 해요. 그래서 내가「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이기택씨가 나올 겁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이씨는 원래 내 계보사람이라 나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화가 나기도 해서 나는「당신들 마음대로 하라」고 해 버렸지요.

<깊숙한 얘기 설도>
전당대회를 2주일쯤 앞두자 이번엔 김재규 부장이 나서더군요. 해방 후 내가 대구 계성고에서 훈육 주임을 하고 있을 때 군에서 잠시 나와 있던 김씨가 나를 찾아와「계성학교 체조 선생을 하고 싶으니 시켜 주십시오」라고 부탁한 적이 있어요. 이때 우리학교에는 체조부가 없어서 내가 대신 대륜중학교에 취직시켜 주었지요. 또 금씨 동생을 계성 고등학교에 입학시켜 준 일도 있어요.
그래서 김 부장은 그때 내게 신세를 항상 잊지 않으며 다시 군에 들어가 군단장을 할 때는 한 달에 한 두 번씩 저녁을 사곤 했어요. 우리 사이가 그러니 김 부장은 나한테 후보 그만두라는 말을 하기 곤란했겠지만 직책이 직책인지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시내 P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했는데 정보부 간부들이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하더라고요.
김 부장은「미안하지만 제가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후보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냐 사퇴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2년 후에 전당대회가 또 있지 않습니까」라는 거예요. 내가 「아 새 사람들이 그러는 것도 문제인데 김 장군이 직접 나서서 야당당수까지 정보 부에서 만들려고 하니 놀라울 뿐입니다. 나는 끝까지 할겁니다」라고 했어요.
김 부장은 내가 버티자 머쓱해 하며「고생하시는 게 안 돼 보여 이야기 드린 것뿐」이라며 슬그머니 발을 빼더군요.
마지막엔 차 실장이 직접 나서더군요. 전당대회 1주일 전쯤인가 청와대에서 가까운 호텔에서 저녁을 같이 먹었어요. 표정을 보니「사퇴하시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 같았는데 말은 그렇게 하질 않더라고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보 부에선 이번에 이철승씨를 총재로 밀려는 모양입니다. 신 선생님께서 나오tu서 괜히 고생하시는 게 가슴이 아픕니다」고 해요. 내 내 대답은 똑같았어요』
신-정보부 비밀접촉에 대해 전 정보부 관계자들이 주장은 다르다. 중 정의 Z씨는『당시 차 실장과 신씨, 김 부장과 신씨의 관계로 보아 보다 깊숙한 이야기가 오고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T씨는 자기가 후보로 나서되 2차 투표에서는 이철승씨를 밀기로 약속했었으며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전당대회 후 정보부 측에서 심한 소리를 했던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신씨는 이에 대해『이씨를 밀겠다고 한 적이 없으며 전당대회 후 정보부 사람을 만난 일도 없다』고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다.
박 정권의 야당관리에서 신씨보다 비중 있고 중요했던 사람은 물론 이철승 대표였다. 이 대표와 밀월관계를 유지해야 했던 박 대통령은 때로 이 대표의 정치민원을 해결해 줌으로써 야당 내 그의 입지를 다져 주려고 했다. 그의 대리인이었던 차 실장·김 부장 등 이 그 일을 맡았다.「박 정권을 쑤셔 뭔 일을 하려면 그래도 이 대표밖에 없다」는 인식을 야당 가에 심 어 놓으려는 원모심려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차 실장과의 비밀 회동을 적극적으로 시인하면서 현실정치 론을 폈던 이철승씨는 김 정보부장과의 접촉에 대해서도 이런 증언을 했다.

<이씨와 밀월바라>
『77년11월 이리 역 폭발사고가난지 얼마 안돼서 였어요. 하루는 내 출신지역인 전북지역 유지 몇 사람이 찾아와 하소연을 하는 거예요.「이 대표 님, 무슨 비리조사를 한다고 치안본부 특수 대에서 전북의 건설업자들을 몽땅 잡아갔어요. 어찌나 심하게 다루는지 고생이 말이 아니랍니다. 빨리 풀려날 수 있게 손 좀 써 주세요」라고요. 전후 사정을 알아보니 당시 김모 내무장관이 건설업자들이 관련된 무슨 부정 혐의가 있다며 일제조사를 한다는 거예요. 다급해진 전북 인사들이 국회 고위 간부였던 J씨 등 고향출신 인사들을 찾아가 부탁했는데 해도 해도 안되니까 나한테 찾아 왔더라고 요.
그래서 내가 당장 김 부장을 만났어요.「전북에 있는 업자들을 다 합쳐 봐야 서울에 있는 1백대기업 중 하나에도 못 미칠텐데 뭐가 있다고 이렇게 하느냐. 전라도에는 제대로 투자도 하지 않는 이 정권이 왜 사람만 잡아가느냐. 당장 풀지 않으면 전라도사람들 다 일어날게다」고 항의했죠. 김 부장 그 사람 그래도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이에요. 며칠 기다리니 잡혀갔던 업자들이 다 풀려나더군요. 그밖에 또 김 부장을 통해 지역발전을 위해 지원 받은 일이 몇 가지 더 있어요.
군산외항 증축이라든가, 노 풍 미 피해보상이라든가 말이에요.』 <김 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