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니까-김윤덕<여성개발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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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거져 주어도 안 먹을 쭈그렁 참외 같은 여자지만 여성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 출마했습니다.』
지방의회에 출마한 어느 여성후보가 토해낸 연설의 첫 마디다.
연설을 끝내고 내려온 그를 붙들고 『이 바보, 왜 자신용 그토록 깔아뭉개요. 왜 여자가 거져주어도 안 먹을 쭈그렁 참욉니까? 격에도 안 맞게 자신을 너무 치켜올리는 것도 꼴상 사납지만 그렇다고 너무 자신을 비하하는 것도 겸양을 넘어 자기 학대요. 더구나 여성 모두에 대한 학대란 걸 왜 몰라요』라고 쏘아 붙였다.
허나 그 기나긴 세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서도 사람으로 살지 못하고 여성으로밖에 살수 없었던 숱한 연륜이 그가 자신을 비하하는데 익숙하게 길들였을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조여듦을 어찌하랴!
그 후 당선한 여성의원들을 축하하는 모임에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지금쯤 피 멍울로 토해낸 자신의 목쉰 소리가 허공으로 흩어지는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면 차별의 역사를 함께 체험해 온 여성들은 아무래도 자기편일 수밖에 없다고 속단했던 자신의 성급함을 자조하고있는지 모른다.
4천2백64대 40, 이번 지방의회 남녀 구성비율이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인데도 난 자꾸 아니라고 도리질해댄다. 오늘의 이 엄청난 변화를 여성들만 거역하고 살았을 리 없다고 철석 같이 믿었던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의 공존은신의 섭리일 것이다. 남성들이 이 천리를 깨달아 여성을 사람으로 대접하게 하려면 먼저 여성이 여성을 사람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제 남성과 여성은 주종의 관계를 벗어나 함께 깨어 있는 것을 더 즐기는 사회를 맞을 준비를 해야한다. 그래야만 화장기 없이도 여성은 당당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 남자는「여자니까」안 찍어 주고, 여성도 「여자니까」안 찍어주면 여성의 좌절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여성들이 이 변혁의 거센 물결의 피안에서 자아분열증에 걸려 있는 한 여성의 능력은「도둑맞은 자원」으로 역사의 그늘에 영원히 묻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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