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정선 낙엽송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3면


Canon EOS-1Ds MarkⅡ 70-200mm f8 1/350 ISO 100

아우라지의 고장 정선으로 들어서자 먼 산 비탈마다 듬성듬성 하얀 빛이 서렸습니다. 바람이라도 스치면 그 햇살이 화사하게 흔들립니다. 눈이 쌓인 것도 아닌데 새하얀 꽃무더기가 겨울 산에 난데없이 피었습니다.

구불구불 산으로 난 길을 따라가 보니 다름 아닌 낙엽송 무리입니다. 잎을 떨어낸 나목들 사이에서 유독 낙엽송 군락만 뽀얗습니다. 곧게 뻗은 줄기며 얼키설키 잔가지며 하얗지 않은 게 없습니다. 서리꽃을 온몸에 둘렀으니 매끈하게 쭉 뻗은 나무 자체가 고운 꽃입니다.

낙엽송은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지만 낙엽이 집니다. 이렇게 잎을 갈아 '잎갈나무' 또는 '이깔나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은 일본낙엽송입니다. 정부가 산림녹화 정책의 일환으로 전국에 심은 데다 관상수나 목재로서의 가치도 떨어져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나무입니다.

하지만, 낙엽송만큼 계절 색이 뚜렷한 나무도 드뭅니다. 이른 봄에 돋은 여린 새잎은 연두색으로 새치름합니다. 여름이면 신록으로 우거지다 가을엔 샛노란 황금빛으로 아롱거립니다. 그러다 초겨울이면 붉은빛이 도는 갈색으로 후드득 낙엽이 집니다. 그렇게 앙상한 뼈대로 겨울을 날 것 같지만 또 이렇게 감히 생각 못 한 흰 꽃으로 화사하게 겨울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햇빛이 두 시 방향 45도 위쪽 산 사이에서 비춰올 때 사진을 찍었습니다. 빛은 묘하게도 서리꽃이 핀 낙엽송의 윗부분만 비추고 나머지 부분은 산 그림자에 묻혔습니다. 그래서 사진 속의 낙엽송만 두드러져 보이게 된 것입니다. 이런 역광 상태에서 빛이 카메라 렌즈에 직접 닿으면 사진이 희뿌옇게 됩니다. 카메라를 산이나 큰 나무의 그림자 속에 두면 깔끔한 역광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