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난민 국제문제로 비화(해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부시의 침묵에 국내외 비난/유럽·유엔중심 대응책 부산/주변 아랍국들 모두 등돌려
쿠르드족 난민이 국제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걸프전쟁 후 쿠르드족이 독립을 내걸고 반기를 든데 대해 국가의 통일성과 바트당 지배체제의 붕괴를 우려,군사적 진압에 나서왔다. 그의 이같은 유혈조치는 국제사회의 적극적 반응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같은 분석이 가능했던 것이,그동안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걸프전쟁 종전을 계기로 대 중동 주도자세로부터 사태관망쪽으로 자세를 전환했던 것이다. 이라크내 수백만명의 쿠르드족이 후세인 진압에 쫓겨 터키등으로 피난하는 사태에 대해 부시 행정부는 침묵으로 일관,국내외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유럽·유엔 등이 후세인 조치에 대해 반발하고 나서자 미국도 더이상 등을 돌리고 있을 수만은 없게 상황이 바뀌고 있고,또다시 후세인체제는 국제사회의 피고석으로 불려나올 형편에 이르고 있다.
걸프전쟁이 한창일때 부시 미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대 후세인 반기를 이라크 국민에게 촉구했다.
이라크내의 소수민족으로 북부 산간지대에서 사담 후세인에 대항,미약하게 게릴라전을 펴왔던 쿠르드족은 후세인에 대한 반군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그러나 부시는 쿠르드족 봉기를 원한게 아니었다. 소수민족에 의해 사담 후세인이 넘어갈 경우 이라크내의 통합이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그가 바란 것은 이라크내의 군부쿠데타였다.
결국 쿠르드족사태와 관련,부시 대통령은 『이 내란에 미국이 개입함으로써 고귀한 미국국민의 생명을 희생시킬 생각이 없다』고 분명한 태도를 밝혔다.
결국 쿠르드족은 예전처럼 다시 미아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셈이다. 멀리는 지난 7세기 이후부터 근세에 와서는 지난 1백년전부터 독립국가를 열망하던 쿠르드족의 꿈은 이번에도 산산히 부서지게 될 것이 확실하다.
쿠르드인은 기원전 10세기께까지 현재의 쿠르디스탄(쿠르드인의 토지) 지역으로 남하한 인도유럽어계통의 산악 유목인.
인구는 약 2천5백만∼3천만명이며 10∼12세기에 쿠르드왕조가 설립했던 기록이 있으나 이 시기를 제외하고는 국가다운 국가를 가진 적이 없다.
유목이 생활의 기본이었던 탓에 제1차 세계대전 후 이 지역에 국경이 설정되었지만 국가를 갖지 못해 유목민 쿠르드족의 비극이 시작됐다.
이란·이라크·터키·시리아·소련 아르메니아공화국 등으로 분단되어 어쩔 수 없이 「정착」하면서 각국의 탄압을 받았다.
제1차대전 후 최초로 체결된 세블조약에서는 현재의 터키 동부를 주체로 하는 쿠르디스탄의 자치가 허용되었다.
그러나 이 조약은 비준되지 않은채 뒤이어 나온 로스앤젤레스조약에서는 결국 언급이 누락되어 버렸다.
60년대에서 70년대에 걸쳐 「무스타파 알 바르자니」의 지도하에서 조직적인 저항운동이 개시되어 이라크 바트당정권과의 사이에서 자치에 관한 합의를 본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후 당시 키신저 미 국무장관의 중개에 의한 이란·이라크간의 알제리합의(75년)에서 「쿠르드혁명」은 압살되었고 이란·이라크전쟁 후에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정권의 생화학무기 공격에 의한 비참한 희생을 치렀다.
주변국 학대도 심하다. 터키의 경우 쿠르드족의 분리운동을 두려워해 쿠르드 고유의 노래를 부를 경우도 감옥에 보내는등 신경과민이 되어있어 이번에도 이라크의 쿠르드족 피난민의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을 봉쇄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리아의 경우는 쿠르드족을 아랍형제국이 아닌 별종으로 취급,완전한 시민권조차 주지 않고 있다.
반면 이란은 이들이 자신들의 시아파회교와 반대되는 수니파 회교도라 해 배척,이들의 이같은 입장때문에 국제정치에서 번번이 이용만 당해왔다.
미국의 배신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지난 70년대초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과 미 CIA는 당시 이란의 팔레비 정권과 결탁,당시 이란­이라크 분쟁에 쿠르드족을 이용했다.
즉 이라크의 힘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이들에게 이라크정부에 반기를 들 것을 부추겼다가 이들을 버리고 이라크와 국경협상을 해버린 것이다.
이들은 인구수로 볼때도 팔레스타인인보다 무려 5배가 많은데도 국제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유순하고 친서방적 입장을 갖고 있으나 번번히 이용만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유혈사태가 발생해서도 주변 아랍국가중 이들의 입장을 동정하는 단 하나의 나라도 없었다.
이들은 또 한번 주변 지정학이라는 괴물에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