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는 국회를 잘 몰라”(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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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국회의원 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검사도 이 재판 끝내고 국회의원 출마 한번 해보시오.』
3일 오후 4시 국회의원 뇌물외유사건 첫 공판이 열린 서울형사지법 대법정. 피고인이 공판검사를 호통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국회 전 상공위원장 이재근 피고인(54·평민)은 검찰 직접신문도중자동차업계와 관련된 검찰의 집요한 질문공세가 계속되자 고개를 곧추세우고 대뜸 『국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자꾸 엉뚱한 질문만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피고인은 한술 더떠 『열흘간의 해외시찰에 1만6천달러를 지급받은 것은 직무수행 명목이라도 과다한 것 아니냐』는 검찰의 질문에 대해서도 『당신네 법무부장관에게 찾아가 장관 해외여행 판공비 예우수준을 물어보라』고 은근히 자신이 「장관급」임을 내세워 핀잔을 주었다.
이피고인에 앞서 직접신문을 받은 이돈만 피고인(43·평민)도 당당하기는 마찬가지. 답변도중 검사가 중복된 질문을 하거나 단어의 의미를 캐물을 때마다 『상식적인 것도 모르는 검사는 문제가 많다』고 몰아세우며 검사와 엉뚱하게 감정싸움까지 벌여 보도진과 방청객을 어리둥절케 했다.
피고석에 선 세의원들은 한결같이 검찰의 뇌물성 외유주장을 일축하며 죄의식보다는 억울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상공위원이라는 직무와 관련해 초청자인 한국자동차공업협회의 경비부담으로 정당한 절차를 밟아 시찰을 다녀온 것일 뿐 향응이나 청탁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이들은 변호인 반대신문에서도 『이 정도의 액수로 외유를 다녀오는 것은 수없이 거듭된 국회의원의 관행인데도 우리만 처벌한 것은 모종의 정치적 음모가 숨어있는 것』이라며 시종 당당한 모습이었다.
이날 오전부터 오후까지 이어진 공판과정에서 세의원들은 자신들의 해외여행에 4천3백여만원이라는 적지않은 경비가 지출됐음에도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은 끝내 한마디도 입에 담지 않았다.
유·무죄 여부야 앞으로 재판부가 판단할 일이지만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의 생각이 국민들과는 거리가 있음을 확인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홍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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