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사형 확정, 부시 행정부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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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사담 후세인(69.사진) 전 이라크 대통령에 대한 사형 판결이 26일 이라크 최고 항소법원에서 확정됐다. 이라크 형법에 따라 사형 집행은 30일 내 이뤄져야 한다. 대통령과 부통령 2명이 참여하는 대통령위원회의 승인만 떨어지면 오늘이라도 당장 사형이 집행될 수 있다.

그러나 후세인 사형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상반된 파장을 가져올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선 조기 집행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라크 정책 때문에 미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조지 부시 행정부로서는 이제 이라크 사태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이다. 따라서 사형 집행은 이라크 정리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백악관은 사형 판결이 확정되자 "정의를 추구하는 이라크인들을 위한 이정표"라고 말해 후세인 사형을 정치적 전환점으로 활용할 뜻을 시사했다. 부시 정부가 내년 1월 이라크 정책 구상을 발표할 시점이 사형 집행과 맞아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 사형 집행이 부시 행정부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뉴욕에 본부를 둔 '휴먼라이츠워치'는 후세인 사형 집행을 공식 반대했다. 국제사면기구(AI)는 물론 인도도 재판 절차 문제를 이유로 사형 판결과 항소심에 정통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아랍권도 미국의 입김이 작용한 재판이라는 점에서 사형 집행을 반대하고 있어 형이 집행되면 반미감정이 더욱 고조될 수 있다.

이라크 주둔 미군도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후세인을 지지하는 수니파 저항세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만약 사형이 집행된다면 후세인 지지세력을 중심으로 집단적 저항이 일어날 수 있다. 이 경우 적잖은 미군이 희생될 수 있다. 이라크 주둔 미군 사망자 수(2974명)는 26일을 기해 9.11테러 사망자 수(2973명)를 넘어섰다.

한편 이라크 정부는 조기 사형 집행을 고집하고 있다. 내전으로 치닫는 이라크 상황을 극복하려면 정치적 전환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철수가 본격 고려되고 있는 미군과 함께 사형 집행 후 후세인 잔당과 무장세력을 소탕해 이라크의 유혈사태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후세인의 사형이 날짜와 장소를 공개하지 않고 집행될 것이고, 그날이 저항세력과 '일전'을 벌이는 전투 개시일이 될 것이라는 갖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후세인이 처형되더라도 '후세인의 악령'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항소심 법원을 취재한 BBC방송 기자는 "법정을 나서는 후세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고 전했다. 초라한 몰골로 미군에 체포된 후세인이 그동안 말끔한 양복 차림으로 당당하게 미국과 이라크 친미정부에 맞서 왔다. 형장에서 영웅으로 순교해 이라크는 물론 아랍권 과격세력에 '반미의 새로운 상징'으로 각인되는 것이 후세인의 마지막 전략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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