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이창호, 피바람 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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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4강전 1국 하이라이트>

○·이창호 9단 ●·백홍석 5단

장면도(86~104)=86부터 이창호 9단의 '공격'이 시작됐다. 흑의 우측에는 백△들이 마치 빙하처럼 높은 벽을 쌓고 있어 이제부터의 도주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잘 말해 준다.

흑에겐 첫걸음이 중요하다. 백홍석 5단은 8분의 장고 끝에 87로 첫발을 떼면서 길을 제대로 잡았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이창호 9단이 90으로 옆구리를 날카롭게 찔러 오자 아차! 하고 후회에 잠기고 만다. 90으로 형성된 백집이 너무 커 단순히 목숨만 구걸해서는 이길 수 없게 된 것도 또 하나의 난관이다.

박영훈 9단은 87 대신 '참고도' 흑1을 제시했는데 이 수라면 백도 다음 수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령 A로 공격하면 자기 집 속으로 몰아넣게 되니 위험하고 B로 공격하면 실전과는 천양지차다.

백홍석도 '참고도'를 생각했었다. 다만 그는 오래전부터 백의 장대 같은 대마를 거꾸로 역습하는 드라마를 꿈꾸고 있었고 그런 마음이 87을 불렀던 것이다.

검토실을 깜짝 놀라게 한 91도 같은 맥락이다. 이 두 점을 살려 놓으면 백 대마도 끊어진 상태. 만약에 백이 96부터 흑의 옆구리를 절단해 오면 그때는 흑도 백 대마를 껴안고 누가 죽는지 생사를 결정해 보자는 배짱이다.

옥쇄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백홍석의 결연함에 이창호 9단은 잠시 머뭇거린다. 아마 옛날의 '돌부처 시절' 이라면 그는 다른 타협책을 찾았을 것이다. 하나 나이 들면서 조금씩 강경해진 이창호는 104까지 곧장 피바람 속으로 달려들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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