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 불 르피가로지 특별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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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소가 살아남는 길은 개혁뿐/고르비는 관료·특권층 대변
소련내 급진개혁세력을 대표하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은 2일 프랑스 르 피가로지 2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소련사회가 처해 있는 위기의 근원인 노멘클라투라로 통칭되는 특권층이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나머지,철저한 개혁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고르바초프의 미온적 개혁의지를 통렬히 비난했다.
다음은 기고문 요지.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으로 선출된 이후 나는 두가지 중대한 전술적 과오를 범했다. 첫째는 내가 고르바초프를 믿었다는 점이다.
「5백일계획」이라는 경제개혁안을 성안하기 위한 공동작업을 수행하면서 중앙정부와 여러 공화국간의 관계는 밀접해지는듯 했고,소련을 영원한 위기에서 구해내는 길이 열리는듯 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경제개혁안을 포기함으로써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모든 희망에 종지부를 찍었다.
소련 공산당서기장이며 동시에 노멘클라투라라고 하는 특권층의 이익유지에 언제나 최우선을 두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그와 어떤 합의에 도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내가 범한 두번째 과오는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이 된뒤 내가 미래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가졌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든 권력은 여전히 지난 70년동안 우리나라(러시아공화국)의 모든 부를 앗아가 아무렇게나 분배해온 자들의 손에 쥐어져 있고,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건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매일밤 나는 다음날 내가 부닥치게될 상황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채 잠자리에 들고 있다. 화폐교환을 이유로 우리가 가진 돈이 몰수될지,인플레를 잡는다는 핑계로 우리의 은행구좌가 동결될지,탱크와 공수부대가 거리에 나타날지 하루 앞의 상황을 우리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결정은 크렘린과 KGB 또는 국방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당의 관료주의에 대항하는 우리의 무기는 국민들의 지지다. 국민들이 우리를 지지한다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일하고,일한 대가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한다는 우리의 단순한 이념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정력적이고 유능한 사람들의 손에 권력이 주어지고,사유화가 순조롭게 이루어지며,토지가 농민에게 돌아가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창조적이고 또 충실한 일상의 삶이 싹트는 것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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