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뒤지고 규모도 영세|두산 「페놀쇼크」 로 본 국내 업계 실태|공해 방지 시설 업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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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공해 방지 시설 공사는 따기도 어렵지만 다 해줘도 대금을 못 받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업체 수에 비해 시장이 작으니 어쩔 수 없지요.』
13년 동안 같은 분야에서 일해온 H기업 김모 사장 (57)의 푸념이다.
김 사장이 이 업계에 처음 뛰어든 것은 지난 78년. 그동안 해오던 가두 광고물 제작 사업을 그만두고 자본금 3천만원으로 환경 산업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현재도 자본금은 1억원, 지난해 매출액은 5억원에 불과해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부실 공사도 잦아>
작년 말 환경처에 등록된 국내 공해 방지 시설 업체는 6백l2개이지만 이중 50% 정도가 자본금 1억원 이하로 영세하다.
국내 공해 방지 시설 사업은 지난 70년대 초부터 시작, 80년 이후 늘어나 외관상으로는 매년 업체수가 15%, 시장 규모가 20%가량씩 늘어났다.
공해 방지 업체 수는 지난 80년 1백60개에서 작년 말에는 4배 가까이 늘었으며 시장 규모도 86년 1천7백억원에서 89년 말에는 3천억원 규모로 커졌다.
이같은 성장에도 불구, 아직도 대부분 업체가 영세하고 설계·분석 등 정밀 기술은 일본 등 선진국에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89년의 경우 업계 총 매출액이 3천억원 수준으로 업체 당 평균 7억원이었으나 상위 22개 사가 1천6백억원을 차지한 점을 감안하면 나머지 업체의 평균 매출액은 5억원에도 못 미쳤다.
특히 지난해에는 업체수가 89년에 비해 1백여개나 증가, 업체 당 평균 매출액도 6억원으로 떨어졌고 올 들어 3개월 동안만 해도 70여개 업체가 늘어나 업체간 경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덤핑 공사와 이에 따르는 부실 공사가 잦고 하자 보수를 요구하는 발주 업체와의 다툼도 심심치않게 일어나고 있다.
공해 방지 시설 사업은 환경·대기·수질·소음·진동 등 공장 가동 과정에서 생기는 각종 공해를 방지하는 시설을 제작·설치하는 현대의 특수 업종.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삼성·코오롱·롯데·대우등 대기업들과 현대 등 대부분의 건설업체들도 방지 시설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들이라 해도 지금까지는 시장 규모가 작아 계열 회사의 방지 시설 공사나 수주 건설 공사에 따르는 폐수 처리장 건설 등 부대 공사를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럭키엔지니어링 등 여타 대기업들도 대부분 그룹 내 공사를 위주로 하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두산 전자의 경우 같은 계열사로 공해 방지 시설 업체인 두산기계가 있는데도 특수 페놀 소각로를 자체 제작하지 못해 지난 작년 일본 업체로부터 수입했고 고장난 뒤에도 고치지 못하다 사고가 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웬만큼 높은 기술이 필요하다 싶으면 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기업 수는 미국·일본 등 1백50여개에 달하고 있으며 국내 70여개 업체가 타 업종보다 비싼 3∼8%의 기술료를 주고 이들과 기술 제휴를 하고 있다.
이같이 국내 기술 수준이 낮은 것은 정부의 지원도 없었던 데다 국내 시장 자체가 협소해 기업들이 자체 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아직도 환경 시설의 설계·설치에 대한 기본적인 표준 규정도 없어 시공 공사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

<시장은 증가 추세>
환경보전법에 따라 환경 오염 배출 업체에는 오염 방지 시설 투자에 대한 세금 감면·방지 시설 설치비용 지원 등의 혜택을 주고 있지만 시공 업체에는 방지 시설 수입 때 관세80% 감면, 환경 오염 방지 기술 특허 출원시 우선 심사 제도 정도가 있을 뿐이다.
세계적으로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이번 페놀 파동을 계기로 공해 방지 시설에 대한 투자도 증가해 업계는 95년까지 시장 규모가 현재의 2배 이상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일부 중견 업체의 경우엔 해외에도 눈을 돌려 대기 오염 방지 시설 업체인 한국 코트렐은 최근 스웨덴·미국·일본 업체와 공개 입찰 경쟁으로 대만 전력 공사로부터 1천5백만 달러의 공사를 따낸 것을 비롯해, 풍산 엔지니어링도 덴마크 식품 공장 2곳의 폐수 처리 시설을 수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기술 수준과 업체들의 영세성으로는 외국 업체와 경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국내 건설 시장 개방까지 앞두고 있는 마당에 시장이 넓어진다 해도 외국 기업들이 고 기술을 앞세워 밀려들 경우 결국 시장을 고스란히 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솔직한 고민이다. <오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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