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하고 바삭하면 '트랜스 지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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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우리 집 냉장고를 열어보면 항상 눈에 띄는 식품이 있다. 아침 식사 대용으로 빵에 발라먹는 마가린이다. 가격도 쌀 뿐 아니라 식물성 지방으로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친근감이 간다. 평소 고소한 맛을 좋아해 빵에 마가린을 듬뿍 칠한다.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빵이 나올 때도 예외가 아니다.

중식당에 가면 요리를 먹고 나서 꼭 자장면을 시킨다. 배가 불러 들어갈 자리가 없어도 입맛이 당기니 포기하기 쉽지 않다. 주방 안을 한번 들여다보자. 아마 쇼트닝을 담은 커다란 깡통이 몇 개 있을 것이다. 자장면을 만들 때 주걱으로 기름덩어리를 퍼넣으리라는 걸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가격이 저렴한 식당이나 닭튀김 가게에 가도 예외없이 쇼트닝 깡통이 놓여 있다. 값이 싸고, 고소한 맛으로도 뒤지지 않으니 사용량이 계속 늘고 있다.

최근 뉴욕시 보건위원회는 인체에 해로운 트랜스지방의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이 조치가 시행된다면 패스트푸드는 물론 모든 뉴욕 식당들이 내년 7월 1일까지 트랜스지방을 함유한 튀김 기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트랜스지방에 대한 유해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경고돼 왔다. 미국.캐나다 등은 식품의 영양표시 항목에 트랜스지방 함량을 표기하도록 의무화했다. 게다가 1회 섭취량(약 14g의 오일) 속에 트랜스지방 함량이 0.5g 이하일 때만 '트랜스지방 0그램'이라고 표기할 수 있도록 했다. 덴마크는 이보다 한발 앞서 트랜스지방 함량이 2% 이상인 가공식품의 유통 판매를 금지하고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트랜스지방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가 늘 접하는 마가린이나 쇼트닝처럼 식물성 기름을 고체화한 것을 말한다. 이른바 전이지방이다.

트랜스지방은 왜 나쁠까? 트랜스지방은 불포화 지방산과 분자구조는 같지만 마치 거울에 비춘 것처럼 좌우가 바뀐(trans) 형태다. 트랜스지방은 우리 몸속에 들어가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나쁜 콜레스테롤(LDL)을 높이고,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 수치를 낮춘다. 게다가 LDL보다 더 나쁜 산화된 LDL을 만든다. 혈관벽에 있는 마크로파지(대식세포)가 이 골치 아픈 LDL을 좋아한다.

대식세포가 산화된 LDL을 먹고, 그 배설물이나 잔해물이 혈관 내벽에 쌓여 동맥경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혈관의 탄력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쌓인 노폐물이 떨어져 나가 혈전을 만든다. 혈전이 떠돌아다니다 심장이나 뇌혈관을 막는 것이 협심증.뇌졸중이다.

트랜스지방은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오메가3 지방산의 대사도 방해한다고 알려져 있다. 오메가3는 정어리.꽁치 등 등 푸른 생선에 많이 있는 혈관에 유익한 물질이다. 트랜스지방이 인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는 많다. 영국의학 권위지인 란셋에 따르면 트랜스지방 섭취를 2% 늘리면 심장병 발생은 25%, 당뇨병은 40%까지 높인다고 경고하고 있다.

트랜스지방 섭취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트랜스지방은 팝콘.냉동피자.감자튀김.닭튀김 등 튀김류, 케이크.도넛.페스트리.쿠키 등 제과류에 많이 들어 있다. 고소하고, 바삭바삭하다 싶으면 트랜스지방을 쓴 것으로 보면 된다.

식물성 기름도 뜨겁게 튀기거나 볶을 때 트랜스지방이 발생한다. 집에서 식물성 기름을 쓸 때 가열하지 않거나, 음식을 볶고 지질 때는 가급적 적게 쓰라는 뜻이다. 그동안 버터는 비싸기도 하지만 동물성 지방으로 배척됐다. 하지만 트랜스지방으로만 따지면 오히려 낫다.

미국심장학회는 트랜스지방 섭취를 전체 섭취열량의 1% 이하로 낮추도록 권고하고 있다.

2000년에 조사된 한국인의 트랜스지방 평균 섭취량은 4.2g. 미국인에 비하면 적지만 그래도 여전히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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