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비정규직 전원 정규직 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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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우리은행이 20일 전격 발표한 '비정규직 전원 정규직 전환'이 재계와 노동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노동계는 크게 반기는 반면 재계는 우선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벌써 내년 노사협상의 최대 이슈는 비정규직 문제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우리은행 사례가 해법의 한 모델로 자리잡을지 주목된다.

◆ 노동계 "해법 찾았다"=비정규직 보호법안에 대해 각을 세웠던 한노총과 민주노총은 우리은행의 노사 합의에 대해 한목소리로 환영했다.

박영삼 한노총 기획조정실장은 "우리은행이 정규직의 양보를 전제로 비정규직을 철폐하기로 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우문숙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은 "상시적인 업무에 비정규직을 남용해 온 다른 기업도 우리은행처럼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에 힘써주기를 바란다"고 논평했다.

금융노조는 한발 더 나갔다. 아예 내년 상반기 산별 교섭에 앞서 비정규직에 대한 특별교섭을 먼저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융노조 권혜영 비정규지부 위원장은 "내년 산별교섭 때 '우리은행식 해법'이 논의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식 해법은 금융노조와 시중은행장들과의 올 여름 산별교섭 때 이미 제기됐었다. 그러나 정규직의 희생을 전제로 깔고 있어 현실 적용엔 어려울 것이란 평이 우세했다. 그러나 우리은행이 그런 정규직의 양보를 얻어내 첫 테이프를 끊은 만큼 다른 은행 노조들도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은행가에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간 정규직이 제 밥그릇만 챙긴다는 비난을 받을 판"이라며 "내년엔 어느 은행인들 우리은행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 마호웅 노조위원장은 "내년엔 다른 은행들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당혹스러운 재계=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재계 입장을 대변해 온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표면상으로는 "개별 회사의 자율적 결정인 만큼 간여할 바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속내는 다르다. 이번 우리은행의 결정이 앞으로 기업들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역력하다.

이동응 경총 전무는 "우리은행은 경영상황이 되니까 이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 뿐"이라며 "다른 기업에 전파되거나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재계 관계자는 "다른 사업장 노조에서도 같은 요구가 빗발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총은 지난해 말 약 540만 명의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같은 임금수준을 적용받을 경우 연간 32조1000억원의 추가부담이 생길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해선 많은 이익을 내고도 임금을 동결한 우리은행 사례처럼 정규직의 양보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현상.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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