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협박 따로”공범 가능성/형호군 피살 “공개수사 6일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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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살해·사체유기등 면식범 소행/“전화협박선 또 다른 범인”점쳐
이형호군(9) 유괴살해 사건의 공개수사 6일째를 맞는 경찰은 그동안 비공개수사에서 저지른 잘못을 물어 수사본부장 이하 간부들을 인사조치하고 18일 원점부터 다시 수사를 시작했다.
신임 수사간부들은 『비공개수사 44일동안 경찰은 범인이 현장에 나타날 경우 어떻게 효율적으로 검거하느냐의 「작전」만 펴왔을 뿐 범인의 윤곽을 좁히는 「수사」는 없었다』고 분석하면서도 『이번 사건은 하나의 사실을 놓고 두가지 이상 서로 다른 분석을 해야하는 부분들이 많아 수사가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경찰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면식범여부 ▲단독범여부 ▲용의자 성문의 증거채택여부등 수사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조차 가닥을 잡기 힘들다는 점이다.
우선 50㎏이 넘고 유괴예방교육을 받은 형호군이 목격자가 나타나지 않을만큼 감쪽같이 유괴됐고 한달쯤 함께 있다가 몸에 별다른 반항흔적없이 살해,유기된 점으로 미뤄 일단은 면식범의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있다.
46차례의 협박전화를 거는동안 한번도 형호군의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은 점도 면식범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협박전화를 분석한 경찰은 ▲범인이 형호군의 어머니가 계모라는 사실을 모르고 ▲집에 있는 차량의 종류와 색깔을 혼동 하는데다 ▲범인이 세차례 은행에 나타났을때 목격한 얼굴이 주변인물이 아니라는 점 ▲끈질기게 몸값을 요구했고 또 세차례나 돈에 과감하게 접근한 점으로 보아 반드시 면식범으로는 단정치 못한채 다만 돈을 노린 목적은 틀림없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유괴와 협박과정에서 보인 범인의 치밀함이 사체유기때에는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서두른 감이 있어 수사에 혼선을 빚고 있다.
오랫동안 형호군을 데리고 다닌 범인이 마지막 협박전화를 걸고 20일이 지난 다음 완전범죄를 노렸을 경우 사체를 야산에 암매장할 수도 있었으나 왜 하필이면 집에서 2㎞ 떨어진 도로변에 유기했을까.
이에 따라 수사간부들은 비록 협박전화는 동일한 목소리로 계속 걸어왔지만 유괴과정과 협박·사체유기때의 범인이 서로 다르다는 공범관계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지난달 13일 양화대교에서 돈가방을 낚아채 갈때도 부근에 차량이 정지한 적이 없는 점으로 볼때 조수석에 탄 공범이 열린 유리창을 통해 손을 내밀어 가방을 낚아채 달아났다고 추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치밀한 범인과 그렇지 못한 공범,면식범과 형호군을 전혀 모르는 범인이 함께 범행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드러난 복합적이고 모순된 범인행적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이점은 그동안 협박전화의 성문과 동일한 것으로 밝혀져 계속 수사를 해온 형호군의 외가친척 이모씨(29)가 알리바이가 확인됐음에도 용의선상에서 배제되지 않고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씨는 범인이 서울과 광명시에서 『김포공항으로 몸값을 갖고 나오라』고 16차례 협박전화를 걸어온 1월31일 가족들과 함께 경주에 내려가 있었음이 여관종업원과의 대질심문 결과 밝혀졌다.
하지만 경찰은 이씨가 ▲최근 사업에 부도가 나 돈에 궁했고 ▲형호군 부모의 별거과정에 깊숙이 개입한데다 ▲운전에 능하고 ▲10만분의 1 이란 오차밖에 없는 성문이 일치함에 따라 이씨의 무혐의에 대한 판단을 계속 유보하고 있다.
경찰은 TV·신문등에서 계속 범인의 얼굴 몽타주를 보도해 주고,특히 방송을 통해 범인의 녹음된 목소리를 거듭 들려주면 의외로 쉽게 사건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시민제보를 기대하고 있다.<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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