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소 다시 가까워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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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한-소 수교를 전후하여 한때 경색된 분위기에 빠져들었던 북한·소련관계가 최근 들어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먼저 90년 들어 쌍방관계악화를 주도했던 소련언론의 대북 비난이 횟수·강도 면에서 눈에 띄게 줄었고 북한도 이에 대응하듯 언론을 통한 대소비난의 톤을 낮추고 있는데서 두드러진다.
「비난강도 완화」라는 양국언론의 태도변화에 비하면 정부당국간의 벌어진 거리는 급템포로 좁혀져 종전의 친밀도를 거의 회복한 인상을 주고 있다.
양국은 최근 어업분야에서 정부간 합의를 이루었고 김일성 대학과 소련 원동국립종합과학 대 간에 교수상호교환협정도 마무리했으며 북한 동 평양화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소련의 지원도 계속할 것으로 약정했다.
통상·문화부문 교류와 함께 군사·정치면의 협력도 주목할 만하다.
소련군사대표단은 1월10일 평양을 방문, 6일간의 일정을 통해 양국간 군사친선협력 강화를 논의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소련대표단의 체류기간 중에는 구체적인 문제가 논의되지 않았고▲쌍방의 골 깊은 불신 때문에 중요한 군사문제를 논의할 분위기도 아니었으며 ▲이번의 소 대표단의 방북이 이미 예정됐던 답 방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번 소련군사대표단의 방북은 비슷한 시기에 한국을 방문한 소련 마슬류코프 부총리가『북한에 계속 재래식무기를 공급하겠다』고 밝힌 것과 더불어 양측의 군사적 유대가 유지·강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신임강제정당시 북한으로부터 유례없는 홀대를 받았던 신임 카프트 평양주재 소대사가 최근 오진우·김영남 등 고위급과 연쇄접촉하고 고르바초프가 카프트 대사를 통해 김일성에 「우호적 친서」를 전달하는 등 정치국면도 새봄의 기운이 역력하다.
금년 상반기 중 고르바초프의 방북 설이 나온 데 이어 로가초프 소 외무차관이 친서에 대해『북한과의 관계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코체토로 국방 제1차관도 모스크바방송을 통해 최근『전향적 북-소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90년의「험악했던」관계를 청산할 의사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밀착관계를 불러온 것은 북한의 경우 변화된 국제정세 속에서 유엔가입· 군사·경협 등 소련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소련으로서도 아-태 신질서구상의 실천을 위해 북한을 다독거려 두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소련은 아-태 지역신질서형성과 관련, 모스크바방송을 통해 북한의 대일 수교를 높게 평가하고 남북대화 중재자로 나설 것을 자청했으며 연형묵 총리가 지난 2월6일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창설 안을 지지했다는 것에 동조적 관심을 표명하는 등 북한을 다시 품안에 끌어들이려는 의도를 적극적으로 내보였다.
유석렬 교수(외교안보연구원)는『최근 소련의 주도적 대북 접근 이면에는 동맹관계 회복이라는 쌍방의 기본적 이익 외에 신질서형성을 앞둔 대북한 선무공작 의도가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소련주도에 의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쌍방관계가 앞으로도 순탄하게 전개될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1월 중순 외교부성명을 통해 소련의「전 아시아 안보회의창설」에 반대했고『남-북 문제가 소련의 의도대로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표명하는 등 전폭적인 관계회복에 걸림돌이 될 만한 제스처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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